임실서 김정희와 이삼만을 만나다

■ 세계서예비엔날레 `전북서예 유산의 길을 따라' 답사기행 도내 시·군 ‘생동(生動)’ 주제 전주 오목대·임실 상이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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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 세계서예비엔날레 오늘(21일) 오후 2시 전주~임실 서예유산 답사 안내자로 나서



세계서예비엔날레가 21일 오후 2시 전주와 임실 일대에서 '전북서예 유산의 길을 따라' 답사기행 행사를 가졌다.

제14회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가 지난달 22일부터 22일까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전북예술회관 등 전북 14개 시·군에서‘생동(生動)’을 주제로 열린데 따른 행사다.

이에 본보 이종근기자가 2023 세계서예비엔날레 '전북서예 유산의 길을 따라' 답사를 안내했다. 답사 코스는 전주 오목대, 임실 상이암, 임실 효충서원 순으로 이어졌다.



△전주 오목대



오목대(도기념물)는 고려 우왕 6년(1380년)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이성계가 개선길에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한제국 광무(光武) 4년(1900년)에 비석을 건립했는데, 태조가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는 뜻의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遺址)‘라는 비문은 고종황제가 직접 쓴 친필을 새겼다. 현재 편액은 석전 황욱(1898~1993)이 썼다.



오목대 주련은 다음과 같다.



淸風明月用不竭(청풍명월용불갈)



맑은 바람과 밝은달은 아무리 시를 써도 다하지 못하고



高山流水情相投(고산유수정상투)



높은 산에서 흐르는 물은 내마음을 나누기에 알맞다.



水色山光皆畵(수색산광개화본)



물빛과 산의 빛은 모두가 그림책 처럼 아름답고



花香鳥語是詩情(화향조어시시정)



꽃의 향기와 새의 울음 소리, 이는 모두 시정이로다



山花水鳥皆知己(산화수조개지기)



산에 핀 꽃과 물에서 노는 새가 모두 나의 좋은 벗이로구나



이목대(도기념물)는 이성계의 5대 할아버지인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의 출생지라고 전해지는 곳이다. 전주 이씨들은 이안사 때까지 줄곧 이곳에서 살다가, 함경도로 이사했다고 한다. 1900년, 이곳이 목조가 살았던 터임을 밝힌 ’목조대왕구거유지(穆祖大王舊居遺址)‘라는 고종의 친필을 새긴 비석을 세웠다. 이 비각은 당초 오목대의 동쪽 높은 대지 위에 있었는데, 도로 확장공사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임실 상이암



상이암은 임실군 성수면 성수리 85 성수산(聖壽山)에 있는 통일신라의 승려 도선국사가 창건한 암자로, 선운사의 말사이다. 875년(헌강왕 1) 국사 도선(道詵)이 창건했고, 1394년(태조 3) 선사 각여(覺如)가 중수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 이곳에 와서 치성을 드리니 하늘에서 “앞으로 왕이 되리라”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여 절 이름을 상이암으로 고쳤다고 한다. 1894년 동학혁명으로 불타버린 것을 1909년 선사 대원(大圓)이 중건했다. 그 뒤 의병대장 이석용(李錫庸)이 이 절을 근거지로 삼고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므로, 왜병들에 의하여 다시 소실됐다가 그 뒤 중건되었지만, 6·25 때 다시 소각됐다. '상이암'은 아홉 마리 용이 여의주를 찾아 다투는 지형으로 명당중의 명당이다. 태조 글씨로 전해지는 ’삼청동(三淸洞)‘이 있으며, 창암 이삼만이 쓴 ‘칠성각’ 편액이 전하고 있다.



△임실 정월리 강목마을



임실지역은 최성간의 비석을 포함, 비석 3개와 편액 3개 등 모두 6점이 있어 명실상부한 추사 금석문의 메카다. 비석으론 최성간묘비와 함께 정월리 김복규 정려비, 김기종 정려비가, 편액으론 양세정효작, 효덕연경지각, 귀로재가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김복규.김기종효자정려비 및 정판이 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정려비란 충신·효자·열녀 등의 언행과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그들이 살던 마을 입구에 세우는 비이다. 임실 효충서원(정월리 강목마을) 내의 정려각 안에 서 있는 이 2기의 비는 조선 철종 때 사람인 김복규, 김기종 부자의 효행을 기리고 있다. 김복규는 효심이 지극한 이로, 16세에 부친상을 당했지만 묘지를 정하지 못한 채 밤낮으로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그러던 중 꿈에 나타난 도사가 일러준 대로 약을 구해 아버지께 다려드리니 다시 깨어나 천수를 누리게 됐다. 바로 이같은 그의 효행을 듣고 나라에서는 증 공조참판동지의금부사의 벼슬을 내려주었다. 아들 기종 역시 아버지에 대한 효가 지극하여 부모상을 당하자 3년간을 묘 옆에 초막을 짓고 살며 애통해 했다./복정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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