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발걸음]자연환경을 통해 본 고인돌에 담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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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일출에 맞춘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촬영: 사가 쇼우꼬)



/이병렬(고창문화연구회 사무국장·이학박사)



지난 하짓날 지인과 함께 강화도를 찾았다. 강화도를 찾은 것은 고창 고인돌에서 나타나는 천문학적 패턴이 강화도 고인돌들에서도 보이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사전조사는 강화나 고창의 고인돌이 동일한 패턴이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나 현지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하지 이틀 전 일본인 지인이 필자의 고인돌의 천문학적 해석을 듣고 수천 년간 풀지 못했던 선사시대의 과학과 지혜를 검증해 주었다. 그러나 내 눈으로 직접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의 두 받침돌 사이로 들어오는 하짓날의 일출을 보고 싶었다. 잔득 기대한 일출의 광경은 짙게 깔린 운무로 관찰이 불가능했다. 다만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내용도 그동안 조사한 고인돌시대 지형학적 해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강화도에는 하짓날 일출방향인 동북의 60°에 맞춰 설치한 고인돌이 유난히 많았다. 물론 규모가 가장 큰 부근리 고인돌이 대표적인 하짓날 일출에 맞춘 고인돌이다. 선사인들이 이렇게 하짓날 일출지점으로 고인돌을 축조한 것은 농경문화와 관련이 깊다. 하짓날 전후로 내리는 강우량에 따라 일 년 농사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고인돌들을 조사하면서 물이 부족한 곳일수록 하짓날로 향하는 고인돌의 규모가 컸다. 오늘날 강화도는 어느 섬보다 물이 풍부한 곳이다. 일 년 내내 섬 곳곳의 제언에 물이 넘실거려 가뭄은 상상할 수 없는 곳이다. 이런 현재를 보고 고인돌 시대도 물이 풍부했다 하는 것은 강화도를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이다.

강화도가 이렇게 물이 풍부하게 된 것은 고대로부터 꾸준히 섬과 섬을 연결하여 거대한 간척지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간척지가 조성되면 과거의 갯골은 오늘날의 수로이자 물을 담아두는 저수지가 된다. 이런 연유로 오늘날 물이 풍부한 것이지 지금의 잣대로 본다면 고인돌 시대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유적이 되는 것이다. 고인돌 시대의 강화도는 여러 개의 섬으로 되어 있었고, 고려와 조선의 거대한 토목공사로 오늘날 한 개로 보이는 거대한 강화도가 되었다. 한 개의 작은 섬일 때와 간척으로 거대해진 강화도의 물 저수량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작은 섬일 때는 물을 가둘 공간이 산간의 곡구나 하류의 작은 간척지의 갯골뿐이다. 그러나 여러 개의 섬을 연결한 지금의 강화도는 섬과 섬을 연결하는 큰 갯골이나 고랑에 많은 양의 민물을 가둘 수 있다. 수전 중심인 오늘날의 강화도 농업은 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하지 전후 여타의 물이 부족한 마을들에서 행해지던 기우제는 큰 행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선사시대 강화도의 섬이 여러 개일 때는 상황이 달랐다. 당시에는 섬들 주변의 간석지나 계곡 등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었다. 고려나 조선처럼 중앙집권의 정치체제 하의 대규모 토목공사는 선사 시대에 불가능했다. 기껏해야 인근의 부족민들이 힘을 합쳐 섬 주변의 간석지나 곡구를 개간했을 뿐이다. 섬의 간척지는 다량의 물이 필요했으나 늘 물이 부족했다. 간석지의 염분을 제거하거나 벼가 자랄 때도 많은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선사인은 강화도의 섬들의 간석지를 개간하면서 갯골과 산간에 저수지를 축조했다. 그리고 가뭄이 들면 비를 내려달라는 기우제를 하지에 맞춘 고인돌 앞에서 간절하게 드렸을 것이다. 기우제를 드리는 시기가 이 때인 것은 씨를 뿌리고 벼가 자라나면서 물이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시기여서다. 그렇다고 지금과 같이 정확한 날이 있다거나 날씨를 확인할 방법도 부족했다. 강화도의 여러 지역에 분포하는 고인돌들에서 하짓날 방향으로 고인돌을 축조한 것은 선사 시대 강화도의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인돌을 자꾸 묘로만 바라보니 고인돌이 가진고 있는 자연환경과 인간의 삶이라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숨겨진 융복합의 의미를 분석하지 못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고인돌에 담긴 천체현상뿐만 아니라 하늘에 제를 올리는 의식과 한 해 농사의 풍년&;풍요와 같은 부족민들이 필요로 하는 간절한 그 무엇도 함께 있었다. 한편, 부근리 고인돌을 중심으로 동북방향 60°로 각각의 큰 고인돌군과 고인돌을 수백m 거리를 두고 일렬로 배치했다. 이는 하짓날 일출방향으로 고인돌을 일렬로 배치한 것이고, 이는 의도된 선사인의 천체학이었다. 물론 이 고인돌들이 동시대에 하지선으로 계획된 배치였는지, 후대 선사인이 추가한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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