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5년06월16일 14:13 회원가입 Log in 카카오톡 채널 추가 버튼
IMG-LOGO

[정종인 논설위원의 시선]백년만의 해후 꿈에 그리던 조국대한민국의 품으로

오는 14일 10시 국립 현충원에서 묘 복원식 및 합장식 개최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3년 08월 13일 14시06분

IMG
/정종인(본사논설위원·최재형기념사업회 홍보위원)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린 최재형 선생의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1880∼1952) 여사의 유해가 70여년 만에 고국에 도착해 오는 14일 오전 10시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합장식을 개최한다.

이에앞서 최 여사의 유해는 지난 7일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출발해 티웨이 항공편으로 인천에 도착했다.

국내로 봉환된 최 여사의 유해는 이날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서 화장돼 국립서울현충원 봉안식장에 임시 안치되어 있다.

정부는 최재형 선생이 순국한 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최재형 선생 기념관(구 최재형 선생 고택) 뒤편 언덕에서 채취한 흙을 오는 11일 국내로 들여와 두 분을 최고의 예우로 14일 국립묘지에 안장할 계획이다.

이어 12∼13일 서울현충원 현충관에 국민추모공간을 마련하고, 광복절 전날인 14일 '백 년만의 해후, 꿈에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부부 합장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러시아 등 해외 각국에 거주하는 최재형 선생의 손자 최 파벨, 증손자 최 표트르, 외증손녀 박 타티아나 등 직계 후손들이 귀국해 추모식을 함께한다.

최 여사는 1897년께 최재형 선생과 결혼해 슬하에 3남 5녀를 뒀다.

9세 때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연해주로 이주한 최재형 선생은 사업가로 자수성가해 축적한 막대한 부를 조국독립과 수십만 시베리아 이주 동포들을 위해 사용해 '시베리아 동포의 대은인'으로 추앙받았다.

최 여사는 남편이 독립운동에 힘쓰는 동안 대가족을 이끌면서도,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이후 고인의 유족들을 보살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재형 선생이 1920년 4월 순국하면서 최 여사는 자녀들과 힘겨운 생활을 이어갔고, 1922년 자본가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키르기스스탄으로 유배됐다.

1952년 사망한 뒤에는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최재형기념사업회는 최 여사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최 여사의 유해가 수습된 비슈케크 묘지 터에 기념비를 세웠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이제라도 여사님을 해방된 조국으로 모셔 와 부부합장묘를 조성하게 돼 너무나 뜻깊다"며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 바쳤으나 유해마저 찾을 수 없었던 순국선열을 단 한 분도 소홀함 없이 예우하는 일류보훈 실현을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와 독립운동을 배후 지원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무총장 최재형 선생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가 기독교계의 지원을 받아 제작돼 오는 12일 공중파를 타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한민족평화나눔재단(이사장 소강석 목사)는 "다큐먼터리 '시베리아 페치카, 최재형'이 12일 오후 10시25분 KBS 1TV를 통해 방영된다"고 밝혔다.

이번 다큐는 9일 최재형 선생의 부인 최 엘레나 여사 유해 국내 봉환과 함께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에 최재형 선생과 부인 최 엘레나 여사의 현충원 부부 합장식이 열리면서 더욱 의미를 더하고 있다.

한민족평화나눔재단이 밝힌 영상 제작동기는 광복 78주년을 맞아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그의 위국헌신의 삶을 선양하며 독립운동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함이다.

최재형기념사업회 문영숙이사장의 헌신과 열정도 이번 유해봉안 작전(?)에 국가보훈처와 함께 일등공신이었다.

최재형애국지사는 1869년에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연해주로 이주한 연해주 한인 1세대다.

그는 10대 시절 러시아 선장의 도움을 받아 상선을 오른 이후 농업과 군납업 등으로 거부의 반열에 오른 사업가이자 교육자, 독립운동가,언론인,외교관이였다.

그는 일제의 침탈과 가난을 피해 국경을 넘은 한인들을 위해 교회와 학교를 세웠고, 대동공보 등 한글 신문을 발행하여 한인들의 지위 향상과 독립운동가들의 정보 교류의 창구를 제공했으며, 안중근, 홍범도 등 연해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와 의병에게 막대한 군자금을 지원했다.

특히 이주 한인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발 벗고 나서 러시아 정부를 설득하는 협상에 나서면서 ‘시베리아의 페치카(난로)’라는 닉네임을 얻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07년 연해주에 온 안중근이 "집집마다 최재형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고 회고할 정도로 그는 연해주에 이주 한인들의 든든한 후견자요 대부였다.

그는 상해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재경부 장관)에 추대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그러나 1920년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연해주 일대에 벌어진 ‘4월 참변’ 당시 체포돼 정식 재판과정도 없이 일본군에게 총살당해 현재까지 유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동안 최재형기념사업회와 한민족평화나눔재단은 2019년 우수리스크 최재형 생가에 흉상과 기념비를 세운 이후 최재형 알리기에 앞장서 왔다.

특히 대다수의 애국 시민들이 참여하는 최재형기념사업회는 2011년부터 중앙아시아 고려인 후손들에게 장학사업을 벌여왔다.

지난해 전주 최씨 종친회는 노비 출신으로 알려진 최재형이 사실은 전주 최씨라는 점을 밝히고 최재형 선양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소강석이사장은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한다"며 "최재형 선생은 다시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시베리아의 페치카’를 넘어 ‘독립의 꿈을 키운 진정한 대부’로 다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담임목사)는 최재형 선생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삶을 전해 듣고 감동받아, 2019년 우수리스크 최재형 생가에 흉상과 기념비를 세우는데 국가보훈부와 힘을 모아 후원하며 최재형 알리기에 앞장서 왔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사단법인 독립운동가 최재형기념사업회(이사장 문영숙)와 함께 최재형 지사 부인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기 위한 모금 운동을 펼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 교수는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전해 듣고 누리꾼과 함께 모금을 통해 최 여사 유해를 모셔 온다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해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최재형기념사업회와 국가보훈부가 올해 광복절에 맞춰 최 지사의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의 유해를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시내 공동묘지에서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운동가묘역으로 옮기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 큰성과를 거뒀다.

최 여사는 최 지사의 독립운동을 열심히 도왔지만, 공식 서훈이 없어 현행법상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최재형'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린 최재형 선생과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여사의 유해가 70여년 만에 고국에 도착해 이제라도 고국의 땅에서 여연에 들어가는 것은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된다"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의 일갈이 가슴을 떠나지 않는다.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새전북신문 기자의 최근기사

Leave a Comment


카카오톡 로그인을 통해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