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상섭(시인·수필가 한국미래문화연구원 전 원장)
독립운동가이신 이육사(본명 이활)는 1904년 5월 18일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서 아버지 이가호와 어머니 허길의 6형제 가운데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적에 기록된 이름은 원록(源祿), 두 번째 이름은 원삼(源三)이었고 훗날 활(活)로 개명했다. 자(字)는 태경(台卿), 본관은 진성(眞城)으로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다. 그는 어린 시절 보문의숙(寶文義塾)이라는 신식 학교를 운영했던 할아버지 이중직으로부터 전통 한학을 배웠다.
이육사라는 이름은 교도소 수인 번호 264에서 따온 것이다. 1933년 ‘황혼’으로 등단하여 1937년 “자오선” 동인으로 잠시 활약했다. 상징적이면서도 서정이 풍부한 시풍으로 일제강점기 민족의 비극과 저항 의지를 노래하였다. 대표작으로 ‘절정’, ‘광야’, ‘꽃’, ‘청포도’ 등이 있으며, 유고 시집으로 “육사 시집”(1946)이 있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저항 시인인 이육사를 키워낸 안동은 1894년 갑오의병을 일으키어 독립운동의 첫 장을 연 지방으로 친일 행위를 인정하지 않은 기풍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처럼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 일제의 압력에 절대로 굴하지 않는 강렬한 민족정신을 안고 소년 시절을 보냈다.
이육사의 청포도는 비유와 은유를 통하여 나라 잃은 슬픔을 고취하고 국민의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려는 의미가 담겨있다. 언제 낭송해도 편안하고 안정적인 감을 느낄 수 있는 이 시는 우리 국민의 향수를 자아내게 하는 의미 깊은 시이다. 이렇게 선인들은 몸을 내던져 일제에 저항하거나 문학을 통한 계몽 운동하면서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자신의 목숨이나 가족을 돌보지 않고 독립운동에 매진했던 선인들의 발자취를 보면 새삼 숙연해지는 마음을 느끼게 된다. 요즘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 사회의 현실을 보면 자못 의구심이 생긴다. 이렇게 자기 몸이나 가족을 돌보지 않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진 우국충정의 선인들이 있어 현재의 세계 경제 10위권의 선진국에 진입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빼어난 국민이라는 대단위 국가관을 확립하고 새롭게 매진해야 한다. 나 하나의 안위나 내 가족만의 행복추구를 우선순위로 생각한다면 이는 편협한 사고이며 다함께 가는 현시대의 국가관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가족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마을이 모여서 국가를 형성함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나 한 사람이 소중한 국민이요 국가의 일익을 담당하는 중추적 인재임을 말해서 무엇하랴? 우리라고 하는 범주를 중요시하여 함께 수레를 끄는 동반자이어야 한다. 그러면서 깨어 있어 항상 갈고 닦으며 부단한 노력으로 새 시대를 이어가는 빼어난 국민이 되어야 한다. 내가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를 중요시하며 항상 진력하는 생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야말로 한민족의 굳건한 의지임을 말해서 무엇하랴? 하나는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하나를 배려함이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이요. 삶의 방편이었다. 요즘 국가의 국민을 위함이 여러 측면에서 회자 되고 있다. 장마철의 위험한 축대며 저지대에 사는 생활 수준이 낮은 국민의 불편부당함을 정부는 자세히 살펴 작년의 우(愚)를 범하면 안 된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으로 새롭게 무장해야 한다. 이는 공직자의 책임윤리이며 국민의 봉사자로 소임을 다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책임감이 사회 전반에서 메아리칠 때 우리의 삶은 안전하고 편안할 것이다. 국민을 위한 복지가 가장 안전한 제도임을 천명하는 바이다.
이 계절에 우리 모두라는 대단위의 공동체가 함께 아름다움을 가꾸는 시절이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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