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흥재(한국지역사회문화연구소 대표)
우리 민족은 훌륭한 ’공공성 DNA‘를 지니고 있다. 나라를 위하여, 공공질서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공공을 높게 여긴다. 그리고 이를 사적인 것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다. 선공후사니 천하위공이니 하는 말이 공공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말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공공성이라는 말이 623차례나 등장하고, 승정원일기에는 1,265건이나 등장한다. 중국의 1,300년 역사를 기록한 자치통감에도 공공이라는 말은 겨우 6번, 명실록에도 10건도에 그친다. 일본은 위에서 아래로 은혜를 베풀 때 공공이라는 말을 써서 높고 낮음을 구분해서 쓴다.
공공은 시설물을 관리할 때 책임자의 역할과 책임은 무겁다. 영조물설치 관리상의 하자에 대해서 국가책임은 엄중하다. 공적인 인간도 마찬가지로 보통사람들보다 더 무겁게 책임을 지고 떳떳하게 일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엔터테이너들도 스스로를 공인이라고 부르며 무슨 연애 시작과 끝, 이혼 같은 사적인 시시콜콜한 것을 기자회견으로 발표하는 촌극도 벌인다.
그렇다면 공공의 시간은 어떠한가? 시간에도 공공성이 적용된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므로 회의시간은 공공의 시간이다. 꼭 참석해야하고, 회의 중에 개인적인 짓을 하면 안된다. 비트코인을 사고 파는 짓은 공공의 시간을 훼손한 짓이다. 화장실에 가서 했다고 지저분한 소리를 하는 것은 더 추악하다.
공공의 시간이란 무슨 중요한 일을 하는데 ‘필요한 시간’에도 적용된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기좋은 ‘적합한 시간대’를 말한다. 공직자가 때를 놓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공공시간에 대한 존중이다.
“천승의 나라를 다스릴 때에 일을 공경스럽게 하여 신뢰를 주고, 물자를 절약하여 사람들을 사랑하며, 백성을 부릴 때는 적절한 때에 맞게 해야 한다(使民而時)”(학이 5). 공공의 시간은 적절한 때를 맞춰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둘러야 할 일을 늑장부리거나 멈춰야 할 일을 질질끌고 가는 행동은 ’공공의 시간 남용죄‘에 해당된다.
지금은 스피드가치의 시대인데, 공간의 거리보다 ‘속도의 거리’가 더 중요해 졌다. 이럼 점에서 나는 공공의 시간을 사회자본이라고 말한다. 디지털시대의 공공서비스란 공공시간으로 개인시간을 도와주는 활동이라고 봐야한다. 법원이 판결을 늦춰 부정 당선된 시장이 임기를 꾸역꾸역 이어가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어떤 법의 효율성이 떨어지면 일몰법으로 처리해야하는데, 그냥 두고 보는 것도 중죄다.
우리는 자원이 없어서 알차게 계획을 세워 집행하면서 시간을 아껴 개발연대를 살아왔다. 이른바 ’압축 성장‘으로 성공하기까지 공공의 시간을 압축해서 쓰며 중장기계획을 여러 차례 수립해 성공했다.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데서 걱정이 생긴다(人無遠慮 必有近優)”(위령공 11). 시간의 범주를 멀리보고 좋은 일이나 좋지 않은 일을 내다보는 시간 관리의 지혜는 공공에서 많은 결과의 차이를 가져온다.
공공의 시간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데리고 흘러간다. 공자가 시냇가에서 말했다. “모든 흘러가는 것들이 저와 같구나. 밤낮 쉬지 않고 흐르고 있구나”(不舍晝夜(자한 16). 공공기관이나 공직자는 늘 준비해야 한다. 시간의 흐름, 지식의 흐름, 모든 흐르는 것들에 대해 준비해서 적시에 활용해야한다. 공공의 시간을 남의 것이라고 여겨 무한한 것으로 여기는 정상배들에게 가장 소중한 인식은 시간은 흐르고 또 흐른다는 단순한 진리다. 그들은 왜 그것을 모르는가.
“세상의 가장 큰 원리는 살려내는 정신(天地之大德曰生)이다” 주역의 계사전 하편 1장에 나오는 말인데, 공자는 이것을 곧 인이라고 했다. 세상이 썩고 거짓이 넘쳐도 시간은 정직하다. 공공의 시간은 지능정보시대를 앞질러 가는 지름길이다. 공공의 시간을 속이는 일은 사람들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끝까지 바보로 만들 수는 없다. 잠시 공공의 시간을 속이는 일은 금방 들통난다. 왜? 공공이 지켜보고 있으니까.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