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파김치

최정순

기사 대표 이미지

씻어 가지런히 소쿠리에 담긴 쪽파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어쩌다 외출할 때면 쪽 찐 머리에 모시 적삼을 입고 나서는 모습은, 논밭에서 일하던 때와는 사뭇 달랐다. 곱게 빗질한 머리가 쪽파처럼 갸름해서‘쪽 찐 머리’라 하나 보다. 씻은 쪽파가 파김치로 변화될 순간이다. 이때가 쪽파의 일생에 있어서 최고의 날이 아닐까 싶다. 아마 내 일생에 있어서 최고의 날은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혼인 서약’을 했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김치를 담근다.’라는 말은 익히고 삭힌다는 뜻이 담겨 있다던데, 내 굴곡진 삶을 잘 익히고 삭혔는지 더듬어 본다.

쪽파의 물기가 빠지는 동안 모든 양념을 준비한다. 잡다한 생각은 잊고 맛을 내는 데만 정신을 쏟아야 한다. 먼저 풀물을 끓여 식히고, 잡냄새를 잡고 맛을 내는 마늘과 생강을 찧으며 생각한다. 나도 마늘 생강처럼 내 주변을 버무려 맛을 내고 잡냄새를 잡아줄 수 있을까? 풀물에 고춧가루를 푸니 금세 풀물이 붉어진다. 어머니처럼, 고춧가루처럼, 주위를 붉게 물들일 열정은 있는 걸까? 지금껏 무엇을 했냐며 나 자신에게 묻는다. 여기에다 곰삭은 멸치액젓을 같이 넣어 버무린다. 긴 세월 곰삭은 액젓은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곰삭은 ‘나’이고 싶다. 누구라도 곰삭아 비린내가 나지 않는 친구가 곁에 있다면 그것도 큰 축복일 것이다. 그런 친구가 내게 있는지, 나 또한 누구에게 곰삭은 액젓 같은 친구가 되어 줄 자격은 있는 걸까? 모든 양념을 큰 함지박에 넣고 버무린다. 간을 맞춘다. 서로 성질이 다른 양념을 합쳐 식구들의 입맛에 맞는 맛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는 어머니가 장사하면서 물건을 사는 사람 비위 맞추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제 양념이 잘 어우러졌으면 물기 빠진 파를 한 켜 놓고 양념을 바르고, 또 한 켜 놓고 양념을 바른다. 이렇게 한 다음 양념이 고루 배도록 풋내가 나지 않을 정도로 다독여 놓았다가 그릇에 담으면 쪽파김치 완성이다. 마치 어머니가 성격이 다른 일곱 남매를 되작되작 되작거리며 비틀어지지 않게 키운 자식들처럼 파김치는 한통속에서 익히고 삭힐 것이다. 이 집 저 집 나누어 먹을 생각을 하면 파김치를 담느라 내가 파김치가 되었어도 마음은 즐겁다.

어머니는 늘 '파김치'가 되어 늦은 저녁에야 집에 오셨다.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장사하셨다. 마늘같이 톡 쏘는 냉정한 손님, 고춧가루같이 맵고 까다로운 손님, 풀물처럼 속을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손님, 때로는 곰삭은 액젓 같은 단골손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손님들이 찾아주셔서 오늘은 장사를 잘했다며 우선 급한 자식부터 학비도 주고, 쌀 연탄, 아버지 약값도 치르며 살았다. 오늘 내가 파김치를 담느라 파김치가 되었어도, 어머니가 여러 사람 비위를 맞추며 물건을 파느라 파김치가 되었어도, 그 일은 행복을 산 것이다. 자식 손에 학비를 쥐여줄 때 얼마나 흐뭇해하셨던가. 늦은 저녁 하얀 쌀밥을 지어 얼큰한 파김치와 저녁을 먹는다. 매운 파의 향이 코끝을 자극하는 순간, 눈물, 콧물이 핑! 되씹히는 어머니! 옷소매로 눈물을 닦는다. &;





최정순 수필가는



'대한문학' 수필 등단

수필집 '속 빈 여자', '속 찬 여자'

제7회 행촌수필문학상. 대한문학 작가상 리더스에세이 작품상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 행촌수필, 영호남수필, 은빛수필, 대한문학회 회원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