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한 풍류를 지성의 물보라로 완성하다

김스미의 미술산책 〈24〉 겸재 정선 ‘박연폭포’ 오래된 체증이 확 풀리는 시원한 물줄기 박진감 있는 깊은 멋은 호탕한 선비의 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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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폭포’, 1750, 종이에 수묵, 119.4×51.9cm, 개인소장



조선에 겸재 정선이 있다. 조선의 독창적인 서화가 세계적인 이유다. 유럽은 현대 미술의 아버지 폴 세잔을 말한다. 조선 산수화의 대가, 정선(1676-1759)의 깊고 무한한 정신세계를 표현한 그림이 한 수 위다. 진경산수는 실제 경치의 사생이 아니라 회화적으로 재해석한 형상으로, 정신을 그리는 기법이다. 그는 진경산수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 완성했다. 예술은 어쩔 수 없이 에디팅(editing)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받으며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트렌드를 만드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숙종, 영조 시대 대두된 실학을 배경으로, 중국풍의 산수를 그리던 당시 화단의 관념산수의 틀을 벗었다. 시대와 사회문화적 견해가 예술 작품의 배경이다. 진경 시문학의 태동과 조선의 고유색으로 산수를 그린 겸재는 사상적 맥락이 같다. 그의 평생의 벗, 시인 이병연과의 시담도 유명하다. “경중을 어이 값으로 매기겠는가. 시는 가슴에서 나오고 그림은 손으로 휘두르니 누가 쉽고 누가 어려운지 모르겠구나.” 시와 그림을 존중한 우정이 인생에 큰 기쁨이고 위안이었다.

내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화인으로 살겠다던 정선의 박연폭포는 인왕제색도, 금강전도와 더불어 겸재의 3대 명작이자 세계적인 국보다. 박연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를 보면 오래된 체증이 확 풀린다. 흑백의 강렬한 대비의 퍼포먼스가 관객의 자잘한 생각들을 일거에 날린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를 위해 벼랑을 꺾어 구부리고, 짙은 먹의 과감한 터치로 주변을 정리한다. 절벽에 아슬아슬한 소나무와 태점들이 강인한 생명력을 말한다.

폭포 시작과 아래, 바가지 모양 반달 바위의 비례가 작가의 정체성에 점을 찍는다. 박진감 있는 깊은 멋은 상상할 수 없는 선비의 호탕한 기개로 보인다. 헨델의 메시아 ‘할렐루야’처럼 앉아서 볼 수 없는 작품이다. 산 위에서 바라보는 듯한 부감법이라는 시각 구성도 작품의 극적 효과를 더한다. 작가의 원숙함은 성실함을 기반으로 한 완벽한 디테일이다. 말년의 명작 탄생도 사상의 완성과 기술적 치밀함의 경지다.

정선의 그림은 조선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사신들이 행차할 때 역관들은 그의 그림을 앞다투어 사서 비싸게 팔았다. 당시 겸재의 그림값이 청나라 1급 화가 월급의 10배였으니 살아생전 그는 이미 스타였다.

많은 중국 작가를 제치고 정선의 그림을 사려 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의 그림과는 확연히 다른 뉴에이지라는 것이다. 명작을 알아보는 눈은 시대를 뛰어넘는다. 보통 관객의 수준을 넘는 전문적인 감각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조상의 얼을 기리고 흠모하는 것이고 겸재가 고마운 이유다.

84세까지 산 겸재의 죽음을 애도한 박사석(朴師錫)은 이렇게 읊었다. “세상에서 명화라면 반드시 겸재를 지목하니, (중략) 우리나라 백 년에 이런 솜씨 없었으니.... 높은 산과 흐르는 물과 더불어 끝이 없으리”

우리 강산을 사랑한 겸재의 진경산수는 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회화의 한 장르로 독창적인 위치를 확보했다. 작품 중 일부는 일제강점기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에 의해 독일의 수도원에 보관되었다가 한국에 영구 임대됐다.

뜨거움을 몰아내는 박연폭포의 하얀 아우라를 듣는다. 애써 문장을 다듬는 어설픈 글쟁이에게 그는 생동감 있는 일필휘지의 신필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다만 강렬한 폭포의 물줄기가 퍼붓는 심연의 목마름은 지금도 그 정체를 모른다./ 화가 김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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