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추념사에 등장한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낯설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집권 세력들이 한목소리로 일치되었던 단어가 '호국영령'에 대한 추모였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령들을 추모하는 현충일에 등장한 '영웅'에 대한 헌사가 조금은 낯설다. 대통령의 언어로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단어들이 많이 등장하는 요즘이다.
대체로 영웅은 살아있는 인물을 대상으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까. 의인들의 행동을 영웅적 행동으로 칭송한다든지 말이다. 유난히 제복 입은 영웅을 묘사하며 그들을 떠올리면 왠지 군인, 경찰, 소방관들이 중심이 되는 협의의 현충일이 되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녹아든다. 해란강 강가를 달리던 독립투사들, 독재 권력에 항거하며 희생되었던 수많은 민주 인사들, 동학혁명의 농민들, 4.19, 5.18 영령들의 제복 입지 않은 모습으로 묘하게 교차 되어 남다른 현충일로 다가왔다.
대통령의 언어는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왜 느닷없이 낯선 '영웅'이란 단어가 튀어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영웅'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유난히 미국은 ‘영웅 시리즈’가 많다. 필요 이상으로 영웅화하고 사회가 그것을 감동으로 받아들인다. 아마도 ‘아메리칸드림’의 일환일지도 모르겠다.
역사가 일천하고 다민족 연방국인 미국은 '영웅의 탄생'이 곧 국가 통합의 중심정서로 필요했으리라. 단일 민족 국가로서 우리는, 도도히 흐르는 역사와 현란하지 않지만 굳고 절제된 강직한 '선비정신'이 곳곳에 녹아 있으므로 영웅 시리즈는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한반도 역사에서 수천 건 의병 봉기의 이면에는 멸사봉공의 선비정신이 녹아 있을 뿐이다.
말없이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야전 참군인들, 사회 안전을 위해 목숨 걸었던 경찰, 불길 속을 본능적으로 뛰어들던 소방관들의 헌신에 감사를 표한다. 아울러 함께 제복을 입지 않았지만 아무런 대가도 명예도 없이 스러져간 학도병, 불의한 독재에 항거하며 죽어갔던 민중들, 제복은커녕 이름도 없이 만주 벌판을 헤매며 스러져간 호국영령의 희생을 가슴으로 추모한다./이창필(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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