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기철(재경 전북도민회 수석부회장)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물이 4.19혁명 기록물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에 등재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지난 18일 날아왔다. 유네스코는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된 집행이사회에서 한국이 신청한 '4·19혁명 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2건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최종 승인했다.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1894년~1895년 조선에서 발발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기록물이다.
동학농민혁명은 부패한 지도층에 저항하고 외세의 침략에 반대하며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민중이 봉기한 사건이다. 최초의 봉기는 전라도 고부에서 일어났다. 당시 전라 고부 군수(지금은 정읍시의 일부) 조병갑이 가렴주구를 일삼아 전라도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였고 이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고부의 백성들이 봉기를 일으키게 되었다. 고부 봉기를 도화선으로 동학농민군은 백산, 무장 등 전국으로 빠르게 퍼져나가 조정에 폐정 개혁안을 제시하고 각지에 자치기구를 설치하여 개혁을 추진하게 된다. 동학농민혁명은 한국이 번영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발판을 놓았으며, 유사한 외국의 반제국주의, 민족주의, 근대주의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이번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통해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조선 백성들이 주체가 되어 자유, 평등,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했던 기억의 저장소로서 세계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이 광주민주화운동 기록물에 비해 12년이나 늦게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은 전북인의 한 사람으로서 서운하기 그지없다. 동학농민혁명은 프랑스혁명, 멕시코혁명과 함께 세계 3대 농민혁명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근현대 세계사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이후 전개된 의병항쟁과 3·1운동,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촛불혁명에 이르게 한 우리나라 민족사의 대사건이자 민주화의 신호탄이었으며 오늘날 평등사상과 자유민주주의, 지방자치의 지평을 열 개 한 우리나라 최초의 ‘아고라’였다는 점에 그 역사적 의미를 더한다. 필자는 이러한 동학농민혁명이 5.18 광주민주화운동보다 저평가 받고 있다는 것이 우리 전라북도의 현주소인 것 같아 한편으로 몹시 씁쓸하다.
5월 11일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은 전북 정읍시 덕천면 황토현 전승지에서 정읍 시민 5백여명이 옹기종기 모여 동네잔치로 치러졌다. 그렇지만 일주일 후 열린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은 윤석렬 대통령부터 여야 국회의원 등 우리나라의 지도부가 몽땅 광주로 옮겨와 그 날을 기렸다. 반외세·자주독립의 시발점인 동학농민혁명은 정읍과 고창, 부안 농민들이 중심이 돼 전라도는 물론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가 이름 없는 수십만의 농민군들이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기치 아래 ‘보국안민(輔國安民), 제폭구민(除暴救民)’을 외치며 반외세, 반봉건 운동을 펼치다 이슬처럼 사라져간 한국사의 길이 남을 일대 사건이었다.
우리 전라북도는 동학농민혁명 특별법이 제정된 지 16년 만에 기념일을 지정할 정도로 정치 지도력의 난맥상을 보여왔다. 이 기간 동안 정읍과 고창 등 관련 자치단체 간의 갈등은 더욱 증폭됐고 지금도 그 후유증이 상당하다. 그래서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정읍 사람들만의 외로운 기념일이 되어 이류 국가 기념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일찍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고 설파하셨다. 영국의 전 수상 처칠이 말한 ‘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 에서 빌려온 말이지만 일제 강점기를 겪은 우리 민족에게는 복음과 같은 말이었다. 이 말은 바로 우리 전북인들의 빈곤한 역사 인식과 잠자고 있는 저력을 깨우라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더욱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은 헌법 전문에 들어가야 한다고 여야 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연한 말씀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로 시작된다.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이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함께 헌법 전문에 나란히 들어가는 그 날을 상상해 본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령 이렇게 말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동학농민혁명의 자주 민족정신과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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