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벽화 다큐멘터리가 예술에 대해서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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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소메티카, 포스트-시네마 시대의 회화와 영화(지은이 박선, 출판 갈무리)'는 천재 예술가에게 헌정되는 이러한 관습적 회화 담론의 외부를 탐색하는 영화들을 분석한다. 천재 화가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들을 우리는 여럿 알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와 ‘영화’를 함께 검색하면 '열정의 랩소디'(1956), '빈센'(1990)를 비롯, 총 여섯 편의 영화가 뜬다. 이런 영화들은 대개 유사한 플롯 진행을 보인다. 천재 화가가 현실적인 고난을 뚫고 창작의 고통을 이겨내며 마침내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카메라 소메티카'는 신체를 뜻하는 낱말 소마(soma)를 차용한 조어다.1장이 분석하는 폴란드 감독 레흐 마예브스키의 영화 '풍차와 십자가'(2011)는 회화 '갈보리 가는 길'(1564)을 활인화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화가를 비롯한 그림 속 인물에게 대사를 부여하고 움직임을 가미한다. '갈보리 가는 길'을 그린 화가는 브뤼걸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16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피테르 브뤼헐(1527~1569)이다. 화가 브뤼헐과 그의 작품 '갈보리 가는 길'은 관습적 회화 담론에서 벗어난 작품이다. 그림의 주제와 주인공을 파악하기 어려운 구도를 택하고 있고(부감도법), 예수와 성모마리아가 그림 속 어딘가에 있기는 하지만 그와 함께 무려 500여 명의 보통 사람이 출현한다. 1장은 영화가 그림 속 인물에게 대사를 부여하고 움직임을 가미한다면 원작회화의 내용은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 거기에서 드러나는 새로움은 무엇인지를 서술한다. 1장뿐 아니라 책 전체에 걸쳐 바쟁의 영화철학과 벤야민의 예술철학, 롤랑 바르트의 사진철학이 참조된다. 고난 끝에 대작을 완성하는 고독한 천재가 아닌 공식으로 예술가를 영화 속에서 재현할 수 있을까? 사회의 모순을 고민하면서 그것을 체화한 화가를 그려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3장에서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 '유메지'(1991)를 분석하면서 탐구된다. 이 영화는 일본 화가 다케히사 유메지(1884~1934)를 주인공으로 삼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예술적 고뇌가 작품으로 열매를 맺는 주류 화가영화의 목적론적 서사를 뒤튼다는 점에서 주류 화가영화의 관습을 전복하는 작품이다.

3장에서 분석한 베르너 헤어조크의 '잊혀진 꿈의 동굴'(2010)은 1994년 프랑스에서 발견된 쇼베 동굴의 원시 동굴벽화를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이 작품은 2014년에 국내 개봉하여 많은 관객의 호응을 받았다. 우선 저자는 동굴벽화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생각해본다. 우리 시대에 예술작품은 작가를 가진다. 작가는 저작권을 소유한다. 그렇다면 선사시대의 예술작품의 작가는 누구인가? 그들은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쇼베 동굴벽화에는 5천 년의 간격을 두고 겹쳐 그려진 동물의 형상들이 있다는 점이다. 5천 년의 세월을 가로질러서 개작된 작품을 현생 인류가 감상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선사시대의 창작자들은 동굴벽화의 시작과 완성을 한 사람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현대예술의 작가주의 및 저작권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웠다”고 한다. 언뜻 보면 당연한 서술이지만 이런 시간을 넘나드는 과감한 사고는 예술의 의미, 회화의 의미, 다큐멘터리를 본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5천 년의 간격을 두고 인류가 협업한 끝에 만들어진 쇼베동굴의 벽화 앞에서 고독한 천재 예술가는 어떤 존재일지 질문하게 된다. 나아가 저자가 보기에 선사시대의 회화 즉 동굴벽화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시청자에게 주는 효과는 ‘지식과 교양’에 그치지 않는다. 동굴벽화 작성자들의 체험과 현대인이 뉴미디어 경험을 하며 느끼는 감각을 ‘숭고체험’이라는 개념으로 연결해볼 수 있다. 관람자는 창작 과정의 일부이다. 관습적 회화 담론이 강화하는 것 중 하나는 작품과 관람자, 무대와 관객, 예술과 다중 사이에 그어진 견고한 선이다. 저자는 이러한 구도의 발생과 함의, 문제점, 그리고 대안에 대해서 5장과 6장에서 신중하게 고민해 본다. 5장에서는 잼 코헨 감독의 영화 '뮤지엄 아워스'(2012)가 고찰되며, 6장에서는 프랑스의 루브르 미술관과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를 각각 소재로 삼은 다큐멘터리 '프랑코포니아(Francofonia. 2015)'와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2014)'를 분석한다. 먼저 두 남녀의 우연한 만남과 우정, 그리고 기약 없는 이별을 극화한 '뮤지엄 아워스'는 '비포 선라이즈'(1996)나 '원스'(2007)에 비견될 만한 작품이다. '뮤지엄 아워스'는 오스트리아 국립미술관을 배경으로 하며 오스트리아 빈 소재 미술사박물관의 안내원인 요한과 캐나다에서 온 여행객 앤이 주인공이다.

5장은 “부르주아 계급이나 예술가와 거리가 먼 생활인”인 두 주인공의 삶과 생각을 보들레르나 벤야민 같은 ‘근대성’ 이론가들의 견해에 비추어 본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성 이론가들의 생각은 “예술의 생산자와 수용자를 구분하면서 후자를 방향성을 잃은 군중 또는 상품자본의 의도에 순응하는 집단으로 규정”하는 기능을 해왔다. 이는 영화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근대성 담론에서 민중·도시민·하층계급은 하릴없는 희생자로 표현되고, 지식인·예술가는 도시의 파괴적 속성을 목도하고 민중의 예속성을 증언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저자는 영화 '뮤지엄 아워스' 가 이방인이면서 생활인인 요한과 앤을 그리는 방식에서, 대안적인 도시 재현 방식, 예술 재현 방식을 엿볼 수 있다고 본다. 산책자 요한이 바라본 도시는 지배받는 자들의 음울한 초상이 가득한 곳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삶의 가능성으로 충만”한 공간이다. 6장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미술관의 관객은 “수동적인 구경꾼이 아니라 예술작품의 의미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창작 과정의 중요한 일부”라고 말한다. “국립미술관은 통속적 대중문화와 구별되는 중상류 취향의 고급문화를 옹호”해온 공간이었지만 “영화, 텔레비전, 뉴미디어 등 대중매체가 문화상품의 생산과 소비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미술관은 고급문화의 성채 자격을 고수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진단이 이제 널리 수용되고 있다. 누구나 손쉽게 기성 작품을 패러디하고, 파생작품을 만들고, 쇼츠 영상을 쪼개 올리고, 촬영하고 업로드하고 공유하는 시대에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미술관의 전통적인 정체성이 붕괴하는 상황은 예술의 정의, 정전의 자격, 예술 감상자의 태도에 관한 고정관념을 재고”하게 만든다. 이때 다중은 미술관, 제도 미술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인지가 6장에서 고찰된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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