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향기] ‘보이지 않는 고릴라’와 만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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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시은(말글콘텐츠연구원 이음 공동대표·문학박사)



심리학에 아주 유명한 고릴라가 있다. 이 고릴라(정확하게 말하면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는 분명히 화면에 등장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릴라를 보지 못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의 이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착각과 오해에 빠지게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두 사람이 만든 짧은 실험 영상에는 흰 티셔츠를 입은 세 학생과 검정 티셔츠를 입은 세 학생이 편을 나누어 농구공을 주고받는데, 영상을 보는 사람은 흰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의 패스 횟수를 세는 미션을 부여받는다. 흰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만 골라내어 이리저리 옮겨지는 농구공에 시선을 맞추는 일은 여간한 집중력이 아니면 쉽지 않다. 두 눈을 부릅뜨고 마음속으로 한 번, 두 번, 세 번… 숫자를 매겨가며 패스의 횟수를 헤아리지만, 정답을 맞히는 사람은 반도 되지 않는다. 영상이 끝난 후에 던져진 질문이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기 때문이다. 차브리스와 사이먼스는 묻는다. 영상 속에서 고릴라를 보았느냐고.

실험 영상의 중간쯤에 몇 초간 고릴라가 등장해 화면 중앙에서 가슴을 두들기고는 화면을 가로질러 사라진다. 고릴라는 보지 못한 사람들은 고릴라가 나왔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 영상 속에 보이는 고릴라가 보이지 않는 고릴라, 투명 고릴라가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처럼 눈의 주의집중이 선택적으로 작용하다 보면 시야에 맹점이 생겨 대상을 지각하지 못하는 것을 ‘무주의 맹시’ 또는 ‘주의력 착각’이라고 한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은 뇌 구조상 멀티태스킹이 원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근거로 활용된다. 우리는 흔히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쉼 없이 알림음을 울려대는 인터넷 환경의 멀티 기술은 우리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고 집중력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되었다. 넘쳐나는 정보를 주체못해 우리의 생각하는 능력은 퇴화하고 있다. 니콜라스 카는 그의 저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인터넷이 생각을 넘어 우리의 뇌 구조까지 바꾸고 있다고 지적한다. 너무 많은 정보가 정신없이 들락날락하는 통에 만성적인 인지 과부하 상태에 놓여 있으며, 체계적으로 기억에 담을 수 없어 창의적이고 깊은 사고를 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멀티태스킹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 인지력은 물론 정보의 중요성을 분별하는 능력도 떨어진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는데, 어느새 나 또한 그 결과를 증명하는 한 사례가 되었다.

서로 관련 없는 이런저런 일들을 컴퓨터 화면에 늘어놓은 채 메일을 보내고 문자를 보내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전화를 걸고 문서 작업을 하다 보면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이다. 컴퓨터와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서툰 솜씨로 컴퓨터와 씨름을 하고 귀가할 때마다 하루하루 바보가 되어가는 나를 느낀다. 모니터에 초점화된 시력은 자세히 보는 법과 멀리 보는 법을 잊어버렸다. 수박 겉핥기로 만나는 인터넷 정보는 다양한 사람들, 넓은 세상에 대한 이해와 인정보다는 애초의 고정관념과 편협함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대학에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라는 말이 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나 관심이 없으면 어떤 일을 하든 참된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뜻이다. 매일 마주하는 무한한 인터넷 세상과는 반대로 나의 세계가 빨대 구멍처럼 작아진 사이, 마음은 더욱 옹졸해져 세상의 아픔에 눈 감고 세상의 절규에 귀를 막은 것은 아닌지. 현실에는 보이지 않는 고릴라처럼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보지 못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공감하지 못하는 타자를 대하듯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결국 마음의 문제이다. 마음을 바르게 닦지 않으면 보아야 할 것은 못 보고, 보지 말아야 할 것에 마음이 끌리게 마련이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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