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현(고원공간정보 부회장 · 전 무주부군수)
역사를 공부하면 누구나 겸손해진다. 지난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치적 행태는 그리스 · 로마 이래 단 한치도 변하지 않았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의 역사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작년 한 해 숙명여자대학교와 국민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논문 표절 문제로 시끄러웠다. 거짓된 논문과 학력으로 학위를 받고 강단에 섰으니 당연한 일이다. 3년여 전에는 연세대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가 “전태일은 착취당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담은 글을 월간지에 기고한 적이 있었다. 또 그는 대학 강의 중에 ‘위안부 매춘’ 발언으로 논란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운하사업이 큰 문제가 되었을 때다. 대학 수질학과 교수가 4대강 사업을 옹호하며 아부하기 위해 이런 주장을 펼쳤다, “강마다 배를 띄워 스크류가 돌아가는 힘으로 녹조를 제거할 수 있다. 그러니 수질에는 문제가 없다” 자신의 학문적 명성을 이용하여 이런 기상천외한 학설을 내세웠다가 호된 비판을 받았다. 두 교수 모두 학문적 양심을 속인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전형적인 예이다.
기원전 중국 역사에서 비롯된 곡학아세의 처세는 여전히 우리나라 주류 사회의 삶의 방식으로 답습되고 있다. 작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장관 후보로 천거된 이들이 뿜어내는 그 갖가지 위법과 탈법의 경력과 처신을 보면 알 수 있다. 또 생때같은 159명의 목숨이 길바닥에서 유명을 달리해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아무 일도 없는 듯한 시간으로 되돌아갔다. 이러한 2023년의 한국은 야만 국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곡학아세(曲學阿世)’는 '학문(學)을 굽혀서(曲) 세상에(世) 아부한다(阿)'는 말이다. 속뜻은, ‘학문이나 지식을 왜곡하여 세상에 아첨하여 자신의 명예나 영리를 도모하고 출세를 도모하는 진실치 못한 지식인’을 일컫는다.
이 고사성어는 중국 고대 역사서인 사마천의 ‘사기’ 유림전에 나오는 말로 시경 박사였던 원고생이 한 말이다. 원고생이 공손홍에게 학문의 정도는 학설을 굽혀 세상 속물에 아첨하는 게 아니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했다.
곡학아세는 요즘 흔히 말하는 어용학자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절개와 지조를 꺾는 변절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도 교묘한 변명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는 변절이라면 그것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 될 수 없다.
우리는 주변에서 배운 도둑이 더 무섭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의 교활한 인물들을 접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배움을 이용해서 세류에 영합하는 사이비 지식인들을 보면 순박한 도둑보다 더 이맛살을 찡그리게 된다. 오히려 그것이 우리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최소한의 양심이 아직은 남아있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진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기록돼 있다. ‘인간의 마음보다 더럽고 추한 것은 없다’라고. 과연 인간의 마음이 추하고 더럽고 비열하기가 어디까지일까?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그렇기에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곧은 절개로 권력과 명예 앞에서도 초연한 사람들을 접하면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숙연해지는 것이다.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위해서 항상 자신의 작은 것에서부터 바로 잡아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밥그릇에는 밥장사 마음대로 퍼담으면 된다. 그러나 나라의 근간인 법을 마음대로 적용하면 안된다. 우리나라에서 법으로 먹고사는 율사들의 법의식과 잣대는 법의 정도를 벗어난 ‘이헌령 비헌령’식의 밥그릇 장사의 법 적용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얼마 전부터 대한민국은 곡학아세가 판치는 어수선한 난세로 흘러들고 있다.
한때, 사회적으로 존경받던 자들이 그동안의 공든탑을 허물어 버리고, 곡학아세 처세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일이 허다하다. 큰 밥그릇 꿰찼다고 국민을 개&;돼지처럼 업신여기면서 방자한 행태를 자행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들에게 공자 말씀을 전한다. “하늘이 인간에게 재능을 준 것은 세상을 위해 잘 쓰라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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