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창]옹정제가 써두었다는 대구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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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원광대학교 LINC 3.0사업단 공유·협업지원센터 팀장)





어느 황제는 거처하던 양심전(養心殿) 양 옆 기둥에 대련(對聯)을 걸어두고 늘 이를 되새겼다고 한다.

“原以一人治天下 不以天下奉一人”

천하가 다스려지고 다스려지지 않고는 나 하나의 책임이며, 천하가 한 사람만을 받들게 하지는 않게 하겠다는 뜻이다. 청의 5대 황제인 옹정제(雍正帝)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성과 휘는 애신각라윤진(愛新覺羅胤&;), 묘호는 세종(世宗)이며, 시호는 경천창운건중표정문무영명관인신의예성대효지성헌황제(敬天昌運建中表正文武英明寬仁信毅睿聖大孝至誠憲皇帝), 짧은 시호로는 헌황제(憲皇帝, 연호는 옹정(雍正)이다.

옹정제에 대하여 전대 황제인 강희제 말기에 일어난 형제들 사이의 황위 다툼과 문자의 옥 등의 사건을 두고 후세의 평가는 찬사와 비판으로 나뉘기도 하지만, 그가 하루종일 정무에 매진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옹정제는 지방의 총독과 순무 등 지방 관리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꼼꼼히 읽고 그에 대한 의견을 다시 보냈다. 이때 옹정제는 황제만이 사용하는 붉은 먹으로 쓴 글씨, 즉 주필(朱筆)로 답장을 썼는데, 그 답장을 주비유지(朱批諭旨)라 칭한다.

이 주비유지는 황제의 명으로서 시행되었고 이는 옹정제와 말단의 신하들까지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 옹정제는 공식적인 보고 경로와 독자적인 보고 경로를 함께 활용하여 양쪽이 맞지 않으면 추궁하는 식으로 지방관들을 장악하였으며, 이 주비유지를 나중에 모아 책으로 묶어 옹정주비유지(雍正朱批諭旨)로 명명하고 지방 관리의 참고서로 삼게 하였다.

옹정제는 전제군주였으며 그가 살던 시대와 현대사회는 많은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그의 리더십을 오늘날에 대입하는 것은 진흙 속에 빠진 새가 진흙에서 빠져나오는 것처럼 어렵다. 그러나 '위군난(爲君難)이니 견인불발(堅忍不拔)하라', 군주가 되는 일은 지극히 어려우니 굳게 참고 견디어 흔들리지 말 것을 다짐했던 그의 리더십은 ‘강건성세(康乾盛世)’, 청의 태평성대를 뒷받침했다.

우리의 현재는 어떠한가?

밥상머리 물가에는 적신호가 켜졌고, 경제 위기 또한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물가가 높아지면 소비위축을 불러오고 인플레이션은 실질 가치 하락과 수요 감소를 부른다. 가계 지출이 축소되면 기업의 재고는 증가해 생산을 축소하고, 이는 구조조정으로 인한 고용 감소와 실업 증가로 이어져 다시 가계 소득 감소와 지출 감소를 확대시킨다. 국내 물가의 과도한 상승은 수출 가격경쟁력을 약화시켜 수출 감소와 수입 증가로 이어져 무역수지 약화로 이어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으로 인플레이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레고랜드 사태'가 터졌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한국전력공사, 한국도로공사, 철도공단, 인천도시공사, 부산교통공사, 한국가스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AAA급 공채마저도 발행예정량 미달 및 유찰이 이어졌다.

해외에서도 국가신용등급에 준하는 것으로 여겨져 온 지방자치단체의 신용이 깨진 것에 놀라 이번 사건을 ‘워치리스트’에 등재를 검토, 대한민국의 국가신용도에 영향이 있을지 모니터링한다는 말이 나왔다.

강력한 권력이나 지위와 이해관계에서 오는 달콤한 이익에 취해 우선순위를 망각한 위정자는 결국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리더십은 난세(亂世)에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이 난세에 위정자들이 본분을 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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