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연교수의 전북문화재이야기]부안 시남재의 현판과 주련

시남재에는 근대 최고의 명필들이 쓴 현판과 주련이 많아 문화재로서의 재인식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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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연(전북문화재 전문위원·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초빙교수)





부안 내변산을 오르기 시작하여 얼마되지 않아 청림마을 부근에서 고풍스러운 한옥 한 채를 발견하게 된다. 이 건물은 진주 강씨 문중의 재실(齋室)인 시남재(始南齋)로, 이곳 상서면 청림에 낙향하여 중시조를 이룬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강원로(姜元老)를 제향하기 위해 정면 6칸·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인 목조건물로 건립한 제각이다.

얼핏 보기에는 일반 재실의 건축물과 다르지 않으나 유심히 살펴보면 이 시남재에 걸려 있는 현판(懸板) 4개와 주련 2종이 근대 명필들의 필적으로 걸려 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재실의 중앙에 행서와 전서로 쓴‘시남재(始南齋) 현판이 있고, 각 기둥에는 전서로 쓴 주련이 있으며, 솟을대문의 중앙에는 예서로‘봉래동천(蓬萊洞天)’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고 좌우 기둥과 안쪽 기둥에도 전서로 쓴 주련(柱聯)이 걸려 있다. 그리고 시남재 귓담에 외부로 통하는 조그마한 문이 있는데 그 위에 예서로‘청림(靑林)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먼저 이 현판과 주련을 쓴 근대 명필가들을 살펴보면 석촌 윤용구(石村 尹用求, 1853~1939)·성재 김태석(惺齋 金台錫, 1875~1953)·관재 이도영(貫齋 李道榮, 1884~1933)·위창 오세창(葦滄 吳世昌, 1864~1953) 등으로, 이들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한국서화단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행서로 ‘시남재’를 쓴 윤용구는 당대 최고로 많은 금석문과 현판을 남긴 서예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1871년 문과에 등제하여 예조판서와 이조판서에 이르렀으나 1895년 을미사변 이후로는 여러 관직에 임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출사하지 않고 서울 근교의 장위산에 은거하면서 '장위산인(獐位山人)'이라 자호하며 서화와 거문고, 바둑으로 자오하였다.

전서로 ‘시남재’와 ‘봉래동천’를 쓴 김태석은 당대 전서와 전각에 뛰어났던 서예가로, 신해혁명(1911) 후에는 중화민국 국무원 인주국에 근무하며 임시 초대 총통으로 있던 위안스카이의 인장을 다수 새겼고, 1938년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약 10년간 국내에서 활동하는 동안 『남유인보(南遊印譜)』를 제작하는 한편 전주와 김제 출신의 이광열(李光烈)과 최규상(崔圭祥) 등에게 전서와 전각으로 영향을 끼쳤다.

예서로 ‘청림’을 쓴 이도영은 조선후기 최고의 화가였던 장승업에 이어 안중식(安中植)·조석진(趙錫晉)의 화풍을 이어받은 화가로 평가되며, 김응원(金應元), 오세창(吳世昌)등과 함께 `서화협회'를 조직하여 활동했으며, 당대 문명을 비판하는 풍속화를 많이 그렸으나, 글씨에서도 예서(&;書)·행서(行書)에 능하였다.

주련으로는 솟을대문 바깥쪽에는 김태석이 쓴 전서주련과 안쪽에는 오세창이 쓴 전서주련이 걸려 있는데, 특히 오세창은 조선 말기~근대기의 개화사상, 독립운동, 민족의식의 계몽으로 전개되어 근대서화사를 대표하는 예술가 · 학자 · 서화감식가 · 개화사상가 · 언론인 ·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하였으며, 당대 최고의 서예가로 추앙 받는 가운데 많은 필적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 재실에 근대 서화계의 거장들이 쓴 현판과 주련이 걸린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인연으로 이들의 작품들이 한 곳에 모이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에 혹시 당시 서화협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진주강씨 집안의 서화가인 청운 강진희(菁雲 姜璡熙, 1851~1919)와의 깊은 인연에서 탄생된 것은 아니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판은 주로 건물의 정면 또는 정문에 거는 목제 판자 붓에 먹을 묻혀 직사각형의 나무판에 붓으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내용으로는 해당 건물의 이름을 적었다. 주련은 기둥에 시구(詩句)를 연하여 걸었다는 뜻으로, 좋은 글귀를 붓글씨로 써서 붙이거나 그 내용을 얇은 판자에 새겨 걸기도 하였다. 현재도 궁궐·반가(班家)·사찰에 가면 손쉽게 볼 수 있으며, 권위 있는 건축물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당대 주요 인물이나 명필이 쓴 현판은 그 자체로 귀한 가치를 지녔으며, 서예사적으로도 연구사료가 됨과 동시에 중요문화재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부안의 외진 곳의 재실인 시남재에 걸린 현판과 주련 또한 중요한 전북의 문화재이며, 그 가치가 매우 높음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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