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존한(한국화가·호산서원 원장)
조선왕조의 기득권 세력이 결사적인 저항과 반발이 개혁의 실패를 거듭하게 하였고 우리의 현대사에서도 통치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개혁을 소리높여 외쳤지만 구조적인 비리의 골은 더 깊어지기만 했다. 기득권 세력이란 언제나 권력의 주변에서 싹트는 것이며 권력이라는 토양에서 무성한 숲을 이루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기전 그의 측근중의 측근이 입에 담았다는 말이 당시의 어느 일간지에 소개된 일이 있었다 “우리가 혁명을 한 것도 아니고··· 인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라면서 개혁부분에 부담을 느끼고 있더라는 단서가 달린 기사였다 이때 국민들은 문민정부의 역사 인식에 적이 실망하였고 그로 인한 혼란과 고초를 자초하게 될 것임을 우려했었다. 역사를 읽으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만일이라는 가정(假定)은 성립되지 않는 것이지만 큰 불행을 당하면 어떤 가정을 정해서 마음의 위로를 찾는 경우가 더러있다
가령 수양대군이 주도한 “계유정란”이라는 쿠테타가 없었다면 이른바 사육신 등의 학문과 충정으로 세종시대의 황금기가 다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위안받듯··· 우리가 말하는 소위 80년 서울의 봄을 구가할 때 12.12와 5.18와 같은 불행을 겪지 아니하고 강력한 문민정부가 들어섰다면 아주 자연스럽게 5.16군사 쿠테타가 역사의 심판을 받으면서 혹독하게 단죄되었을 것이고 그 주동자들에게 중형을 내렸다 해도 누구 한사람 반발하거나 3공화국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단식을 하는 등의 넌센스는 없었을 것이라고 단정에 가까운 가정을 해보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잘못된 과거를 역사의 이름으로 청산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잃었던 탓으로 오늘의 청산이 더 힘들고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확연히 알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백악관의 직원을 25%나 감축하고 고위직 전용의 식당을 폐쇄하더니 장·차관급 고위관료들에게 50달러 이상의 식사초대에 응하지 말도록 조치하였고 95년까지 3년 동안에 연방정부의 공무원 수를 10만명 감원하여 무려 90억달러의 예산절감을 선언하면서도 개혁이란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결코 남의 일로 생각되질 않는다 그 나라에는 권력의 비호를 받는 구조적인 비리나 부조리가 싹틀 여지가 없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나카노고지(中野孝次)라는 사람이 쓴 “청빈의 사상”(淸貧의 思想)이라는 책이 날개돋친 듯 팔린 때가 있었다 발간된지 5개월도 안되어서 무려 23판 30만부가 팔렸다면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아닐수 없다. 책의 내용만해도 그렇다 우리식으로 설명하면 맹사성(孟思誠) 유관(柳寬)과 같은 청백리(淸白吏)의 일화나 한석봉(韓錫琫)의 어머님과 같은 분들의 가난하면서도 좌절하지 않는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삼았던 선현들의 지혜로운 삶을 엮은 내용이라니 책의 해까지 선포했던 우리의 현실을 더욱 참담하게 할 뿐이다. 부총리도 장관도 모두 24평짜리 아파트에서 살만큼 검소한 사람들이 청빈한 삶을 상찬하는 책을 경쟁적으로 사서 읽는다는 이웃나라의 엄연한 현실을 60평짜리 맨션에서 아니 90평짜리 초대형 호화빌라에서 흥청망청한 삶을 즐기는 이땅의 졸부들에겐 웃기는 얘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정말로 남의 일이 아니다. 매국5적의 증손자가 나타나서 나라를 팔아서 치부한 증조부의 땅을 여섯 건이나 되찾았는데 모두가 재판에서 승소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한일합병이라고 불리는 경술국치(庚戌國恥)는 불과 90여년전의 일이다. 나라를 팔아서 작위(爵位)를 얻고 막대한 은사금(恩賜金)으로 36년간이나 계속된 식민치하에서 호의호식을 하고 나서 겨우 50여년 동안을 숨어 살다가 그 재물을 찾겠다고 나서는 후안무치도 어지간하지만 거기에 동조한 변호사와 판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진실로 우리를 참담하게 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대명사나 다름이 없는 변호사는 그들에게 땅을 되돌려 주는 것이 온당하다고 강변하였고 선악을 구별할 줄아는 것을 첩경으로 삼아야 할 판사가 그래야 옳다고 판결을 하였다면 도대체 이 나리에 역사의식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항일로 목숨을 잃은 애국지사의 유족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가르치려 하는지 물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나라를 파는 매국행위가 50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거쳐서 법률의 보호를 받으면서 면죄될 수 있었기에 부정한 두 전직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면서도 동정의 여지가 있다는 등의 가치관의 혼란을 거듭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지 않을까 따라서 그 변론문과 판결문이 공개되어 비록 법의 현실 인식이 생존한다 하더라도 평범한 윤리인식을 앞설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는 것도 역사를 바로하는 첩경일 것이다. 개혁에 저항하고 반발하는 기득권 세력은 모두 드라마나 소설의 악역으로 등장하기에 안성맞춤이다 10년이나 20년의 세월이 흐르면 오늘 우리의 현실은 대단히 흥미로운 역사드라마가 되어 다시 재현될 것이다 그때 악역들의 후손들은 선조들의 악행으로 인한 수치심 때문에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되는 것도 또한 우리의 정서일 것이다. 역사를 일러 범죄와 재난의 기록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고 역사를 심판이나 법정이라고 정의한 사람도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타고로의 공언이 탁견이 아닐수가 없다. 인간의 역사는 학대받는 자의 승리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당대의 학대받은 실패자가 죽어서 그 용명을 떨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우리는 기득권 세력의 서식처인 정치 주변의 도덕적인 붕괴를 철저하게 진단하고 개선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거침없이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지만 비리로 만연된 우리의 주변을 검증하면서 자정(自淨)과 개혁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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