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길선(전북대학교 고분자나노공학과 교수)
금년 3월부터 대학수업이 대면으로 전환되어 우리 학생들과 얼굴을 마주 보고 수업을 할 수 있어 너무 기뻤다. 이공계대학 강의에서 특정식을 유도&;증명하고, 문제 푸는 데에는 비대면 줌강의는 많은 제약이 있다. 특히 과목에 따라서는 설명과 함께 칠판(漆板)에 분필(粉筆)로 쓰는 판서(板書)는 필수적이다.
분필(또는 백묵, 白墨)의 뜻은 가루(粉)로 쓴 붓(筆)글씨라는 뜻이다. 30여 년 전에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선생님이 수업내용을 판서하면 학생들은 노트필기하였고 이를 검사하여 과목점수에 합산하였다. 선생님 전공과목에 따라서 칠판공간을 멋지게 활용하시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대체적으로 지리&;수학&;물리 선생님들이 멋지게 잘 하셨던 기억이 있다. 필자의 전공분야 대부분 과목이 현재의 전자화된 매체보다는 분필로 써서 설명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며 이해도가 높아진다.
교수님에 따라서는 판서자체도 예술적인 경지에 이른 분도 계시다. 특히 난해한 물리학&;수학&;화공학 대단위 강의실에서 큰 칠판 여섯 개 정도에 빼곡히 적혀 있는 난수표 수준의 미적분 수식은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한자를 붓글씨 이상으로 잘 쓰시는 선생님들도 계시다. 이렇듯 분필로 쓰는 판서는 최근에 파워포인트, 전자칠판과는 사뭇 다른 붓글씨 즉, 서도(書道)차원인 것이다. 더 나아가서 다음의 시들에서 인용된 것처럼 혼까지 불어 넣었던 것이다.
1939년에 가람 이병기는 “백묵”이라는 시조에서 “몸을 담어 두니 마음은 돌과 같다/봄이 오고 감도 아랑곳 없을러니/바람에 날려든 꽃이 뜰 위 가득하구나/뜰에 심은 나무 길이 남아 자랐도다/새로 돋는 잎을 이윽히 바라보다/한 손에 백묵을 들고 가슴 아파 하여라”라고 일제치하의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자신의 암울한 현실을 백묵에 빗대었다.
시인 김지하는 “타는 목마름”에서 “(전략)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백묵으로 판자에 서툰 솜씨로 쓴다/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로 백묵에서 썩어가는 민주주의를 타는 목마름으로 찾았다.
IMF로 고통스러운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박세리가 연못에 빠진 골프공을 꺼내러 신발과 양말을 벗는 순간 나타난 하얀 발을 백묵가루에 절여진 발이라고 비유하였다. 장편소설 “프랑스식 전쟁술”을 쓴 알렉스 제니는 은폐된 역사를 폭로하려 분필을 던지고 펜을 잡아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 콩쿠르 상을 수상하였다.
슐츠의 “피너츠”에서는 좋아하던 오스마 선생님이 퇴직하고 다른 교사가 들어오자 주인공 라이너스는 말을 안 듣는다. 그러나 칠판지우개를 털어오라고 시키자 “오스마 선생님과의 추억이 분필가루와 함께 떨어져 나가고 있어”라는 시적인 대사로 분필가루를 퇴직한 선생님과의 추억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분필의 다른 용도로는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이 있으면 분필을 도막내어 정확히 맞추는 선생님도 계셨고, 칠판 닦기도 던지기도 하셨다. 그럴 때면 칠판 닦기에 묻었던 하얀 분필가루를 뒤집어쓰곤 하였다. 교실입구 앞뒤 출입문에 칠판 닦기를 올려놓아 문을 열면 분필가루를 뒤집어쓰는 장난도하였다.
최근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드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가 “수학자는 분필과 칠판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최후의 사람들”이라고 분필 애호가임을 밝히면서 분필이 다시금 재조명되고 있다. 분필가루의 앨러지&;비염&;호흡기 질환의 유발 가능성 등에도 불구하고 “생각의 예술을 하는 이들의 표현도구”라고까지 미국 수학 회장이 애정표현까지 하였다.
“분필가루를 먹었다”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가르치는 일을 했다”고 나와 있다. COVID19 이후 근 이년에 걸쳐 분필 가루를 못 마시다가 금년 삼월부터 강의가 재개되면서 필자도 제자가 선물한 허준이 교수가 사용하는 형형색색의 하고로모(羽衣) 국산 분필가루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즉 교육다운 교육을 시작하였다는 뜻이다.
칠판에 분필로 판서하는 것은 완전 일회성이다. 3시간짜리 속강하면 서너 차례 칠판을 지웠다가 다시 쓰는 것이 예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서가 전자칠판&;화이트보드&;슬라이드&;OHP&;파워포인트보다도 정겨운 것은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조순 전 부총리의 교수시절 판서를 일컬어 “가장 지적인 예술 작품”라고 설파했던 것처럼 현대화된 판서 매체보다 훨씬 교육적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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