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재남(사진가·완주산성연구회장)
동학농민혁명이 처음 일어난 곳도 중요하지만 마지막까지 그 정신을 놓지 않고 항거한 곳도 이에 못지 않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삼례에서 2차 봉기가 일어 나고 우금치에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 동학 혁명군은 대둔산 석도골 바위 위로 숨어 들어 최후의 항전을 결심한다. 필자는 얼마전에 완주 귀농귀촌인 모임이 있어 나갔는데 여기서 신보연(완주자연지킴이)씨를 만났다. 신씨는 언제부턴가 동학 혁명이 일어난 곳부터 발자취를 쫏아서 혁명군이 걸었던 길을 걷고 있으며 나중에 답사 코스도 생각 하고 있으니 대둔산 동학 혁명 최후 항전지를 함께 동행 해 줬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다.
필자는 대둔산 역사 문화 프로젝트를 하면서 사진 촬영을 위해 대둔산 항전지를 몇번에 걸쳐서 다녀 와 본 경험이 있어서 함께 하겠노라고 쉽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집에 와서 가만이 생각해 보니 필자가 대둔산 동학 혁명 최후 항전지를 찿겠다고 험한 여러 골짜기를 오르락 내리며 고생했던 것을 염려 하면 걱정부터 앞서고 또한 여름철이라 녹음으로 숲이 우거져서 계곡이 더 험준해 졌으며 몸은 땀으로 목욕할 것 같은 마음에 사실 후회까지 됐다. 우리는 경천면 용복주유소 앞에서 오전 8시에 서로 만나 산행에 필요한 몇가지 준비물을 점검하고 대둔산 주차장까지 승용차로 이동하였다. 주차장에는 아침 일찍부터 임산물을 팔기 위해 주변 마을 어르신들이 나와서 인사를 하며 안전한 산행을 빌어 주어서 내려 오면 다시 들리 겠다고 덕담을 하며 지나쳤다. 후덥지근하고 곧 비가 오락가락 할 것 같은 날씨여서인지 산행객들은 평소 주말때처럼 별로 눈에 띄 질 않았다.
우리는 경사로를 오르며 등산로 초입에 있는 대둔산 동학 혁명탑에 도착 하여 주변을 둘러 보고 비문을 읽고 나선 여유있게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한참을 등산로 계곡으로 올라 등산로 첫번째 건물인 원효사 계단 아래 좌측 돌담을 따라서 들어 가니 암벽타기 하는 산악인들이 세워 놓은 조그만 표지판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양파 A / 양파 B" 라고 화살표가 그려져서 방향을 나타내고 있는데 "양파 A"를 따라서 조금만 걸으면 석도골로 넘어 가는 꼬불꼬불한 능선길의 시작점이다.
길은 녹음에 가려지고 낙엽으로 덮이기도 했지만 등산객들이 간혹 다녀서인지 흔적이 조금 보이기도 하지만 산죽밭에 있는 길은 분간이 어려워 우리는 능선을 오르는데 여간 곤횩이 아니였다. 한참을 꼬불꼬불 미끄러지며 능선을 오르니 능선 정상에 "솔봉이 길" 이라는 표식이 있었다. 우리는 능선 정상에서 잠시 목을 축이며 숨고르기를 하고 휴식도 잠시 산죽밭을 헤쳐가며 계곡으로 접어들어 본격적인 석도골 오르기를 시작했다.
길 없는 길을 한참 오르면서 몇번 낙석을 조심하며 최후 항전지 바로 아래에 도착하여 입구로 사용했을 것 같은 갈라진 바위 틈새의 외줄 한가닥에 몸을 의지한채 줄타기에 우리는 서로 끌어주고 밀어 주며 오르고 나서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옛날에는 여기를 어떻게 올랐을까. 줄사다리를 놓았나 아니면 나무 사다리를 놓았다가 사람이 오르고 나면 사다리를 위에서 끌어 올려 다른 사람은 못 오르게 하였을까. 숨가뿐 순간에도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대둔산 동학 혁명 최후 항전지에 오르면 누구나 하는 생각은 똑같다.
이렇게 아담한 곳이 어떻게 바위 벼랑위에 있을까. 이곳에서 모질게 추운 겨울을 어떻게 버텨 냈을까 등등 우리는 새 둥지처럼 아늑한 항전지 곳곳을 여기 저기 둘러 보고 그때를 회상하며 각자 감회를 털어 놓았다. 위쪽과 아래에서 좁혀 오는 진압군을 향해 마지막까지 항거하며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서 의지를 확인하는 그 순간 얼마나 떨렸겠는가. 우리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산 아랫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니 항전지 주변에 암자와 우물이 있었다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항전지에서 기왓장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 이 곳이 암자 터이고 혁명군은 이곳에서 결사 각오를 하고 항전의 최적의 장소로 여기를 택했다는 생각을 했다.또한 주변에 우물은 없었고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샘물로 목을 적셔가며 버텻으리라 생각된다.
초두막 몇채가 있었다고 하는 곳을 여기 저기 두리번 거리며 찿아 본다.정상쪽으로 개척탑이 보이며 항전지 바로 옆 미륵 바위는 그때의 처참했던 상황을 분명이 기억하는 것 같다. 금강계곡 케이블카는 반대편 계곡에서 일어난 그때 일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무심한 등산객들만 실어 나르고 있다. 아니 이곳 대둔산의 그런 역사를 저들은 알기나 아는가. 대둔산이라는 같은 산 속에 있지만 문화재 표지판 하나 없이 야속한 세월을 항전지 위에 자리 잡은 늙은 소나무만이 애환을 달래며 서 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주변을 둘러 보고 언제 또 뵈올지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선 마음을 뒤로 하고 오던 길을 되돌아 곧 쏫아질 것 같은 하찮은 빗줄기를 염려하며 하산길을 재촉했다.
동학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평등한 세상을 부르짖었다. 비록 우금치를 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지만 대동세상 하나된 우리 모든 사람이 하늘이라는 평등함을 원했다. 지금에 대둔산 동학 혁명 최후 항전지 유적이 가는 길 조차 어렵고 이렇게 관리가 소홀 하며 항전지 바위에 쇠를 박아 놓고 암벽 타기 하는 코스로 이용되는 것을 보면서 항전지에서 추위와 왜세에 싸워가며 버텨 냈을 혁명군의 그때를 생각해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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