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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정유재란 순절자 명단을 찾다

이용엽 자료집 '진안지역의 동학농민혁명 조사 연구'와 '임진,정유년 전북출신 순절자 명단'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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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엽 진안역사박물관 운영위원장이 자료집 ‘진안지역의 동학농민혁명 조사 연구(발행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협의회 전북지회)‘와 ‘임진,정유년 전북출신 순절자 명단(발행 사단법인 웅치전적보존회)’을 펴냈다.

상조림장전투(上照林場戰鬪)는 1894년 진안군 정천면 일대에서 최초로 벌어진 동학농민군과 일본군의 싸움이다. 전라도 지역에서 동학농민군과 일본군의 최초 전투로, 이 지역에서는 “흰 옷에 죽창과 단발식 화승총을 든 동학농민군이 검정 군복에 장전식 소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무참히 패하여 당시 가을걷이를 한 들판이 온통 아수라장이 됐다. 동학농민군이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내고 노래재로 패주했다”고 전해진다. 비록 상조림장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은 일본군과 관군의 신식 무기 앞에서 일방적으로 패배했으나, 외세에 대한 저항 의식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때문에 노래재 동학농민군 유적 발굴에 대한 계획을 수립해야 하다.

백운면 오정리엔 전병화 등 5명의 군장급 접주들이 살았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했다. 용담전투, 진안전투, 고산 산천리전투와 고산전투, 전봉준의 딸 전옥례 등과 진안 동학의 개요와 의의도 꼼꼼하게 정리했다.

또, 작가는 ‘임진,정유년 전북출신 순절자’로 이치전투 10명, 금산전투 23명, 임진.정유재란의 순절자 19명, 진주성전투의 순절자 14명, 호벌치전투의 순절자 13명, 기타 지역의 순절자 11명 등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기록을 따른 가동들과 일반으로 참여한 인물은 정리되지 않아 기록 위주로 통계 자료를 참고 했다. 이치전투의 경우 이보 의병장과 소행진, 소세득의 큰 아들 계, 작은 아들, 부인민씨, 황상길, 황포, 황박, 남궁섭, 최호 등 10명이 순절한 것으로 보았다.

이보는 400여 의병을 이끌고 1592년 임진왜란 중 금산을 함락시키고 이치로 향하던 1만여 왜병에 맞서 활 낫 쇠스랑 등으로 백병전을 벌이다 모두 순국한 끔찍한 전투였다. 이의병장이 이끄는 익산 의병들은 왜적 수백여명을 사살했다는 기록을 남겼지만, 당시 의병들과 의병장은 백병전 끝에 모두 전사했다. 이로 인해 왜군은 전주성 진입과 호남 곡창지대 점령을 포기하고 분풀이로 농민의병 시신을 가족들이 찾지 못하도록 목과 팔 다리 등을 잘라 훼손해 산야에 흩뿌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전투에서 이보 의병장은 사비를 털어 군량과 군기를 마련해 이치에 도착해 왜병들과 맞서 싸웠지만, 활과 창에 불과한 의병들의 무기는 조총으로 무장한 왜병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이치 전투에 앞서 왜병들의 상당한 전력을 손실시킨 이보 의병장과 그를 따르던 이름조차 밝혀지지 않은 400여 의병은 죽음을 각오하고 출전해 모두 전사한 우리에겐 아픈 역사다. 익산지역 유림들과 연안 이씨 지평공파 후손들이 광복 이후 해마다 익산시 은기동 은천사에서 이들을 위한 ‘대제’를 봉행하고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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