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창의 발견 K뿌리, 12번째는 고창 질마재 100리길을 따라 고인돌을 비롯해 생태습지, 가마터와 서당골, 미당 시문학관, 선운산가와 도솔암 등 4개 코스로써 선인이 걸었던 발자취이다.
고창문화원에서 걸었던 ‘고인돌 질마재 따라 100리길’을 더듬어 고창의 옛길에서 잃어버린 세계적인 생태역사문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 제1코스, 고인돌박물관~원평마을 8.8km (2시간30분)
고인돌을 본떠 만든 고인돌박물관에서 선사시대의 모습을 가상현실 VR 등으로 확인하고서 ‘모로모로’ 탐방열차에 몸을 싣고 고인돌 다섯 구간을 둘러본다.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의 무덤방과 제단의례 등을 확인하기 위해 1.8km 길이의 완만한 산자락을 따라 띠처럼 447기가 넘는 고인돌을 돌아보고서 성틀봉과 중봉의 채석장도 확인했다면 고인돌 시대와 가까워진 것이다.
죽림리 고인돌군 옆에는 녹두장군 전봉준 생가가 있던 곳으로써 그는 1855년 죽림리 당촌63번지에서 태어나 41세까지 동학농민혁명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이어 천년을 말없이 기다린 돌들의 풍경을 뒤로 하고 매산재(쥐겁재)를 넘는다. 이곳은 오베이골을 넘나드는 고개로써 옛날 성황당이 있어 서낭고개로 불려지며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장승이 세워져 있다.
고창읍성에 견주는 서산산성의 ‘통한의 마당’을 지나면 비스듬한 그늘 사이로 생태습지 연못이 보인다. 이곳은 운곡댐 건설 이후 30여년간 통제되어 원시의 생태습지가 형성된 비로 오베이골 생태습지이다.
걷다 보면 300톤이 넘는 동양 최대의 운곡고인돌과 1796년에 창건된 선산 김씨 운곡서원이 운곡마을 실향민들의 고향을 지키고 있다.
이어 굴치고랑 입구에는 우리나라 최고로 추정되는 10세기 말경 고려청자 도요지가 있어 사적 145호로 지정 및 3개의 가마터 발견 등 ‘용계리 청자요지’가 있다.
운곡저수지 옆에는 운곡저수지 건설(1984년 완공)로 인해 운곡, 용계마을 실향민들의 고향 그리움을 달래고자 1987년에 망향정을 세웠고, 2020년에 ‘고창 람사르 운곡습지 유스호스텔’ 6개동 건립과 운곡람사르습지공원에는 탐방열차가 운영중에 있다.
용이 계곡에 살면서 승천한다는 용계리에는 인천초등학교의 폐교 자리에 전통술학교가 있으며 원평마을을 가로지르는 개천에는 손녀를 팔아 제방유실을 막았다는 전설로 인해 ‘깨진바위’. ‘애들보’ 등 인천강의 애환도 전해진다.
이곳에는 선운골프장 근처로써 새우탕과 매기탕으로 유명한 ‘인천가든’과 한옥을 재구성해 용봉탕과 풍천장어 등으로 개업한 ‘홍가’식당도 인기이다.
▲ 제2코스, 원평~연기마을 7.7km (2시간30분)
운곡저수지 제방 아래 원평마을을 지나 4차로(인천강)를 따라 선운사쪽으로 가다보면 옥천 조씨 3형제의 형제우애 시문이 있는 ‘삼호정’과 단종의 유신들이 애절한 충절의 마음을 새겨 놓은 ‘덕천사’ 가 보존되어 있다.
이어 암벽등반으로 인기가 높은 할매바위는 석회암 암장으로 바위 질이 좋아 산악인을 위한 쉼터와 야광조형물이 새롭게 단장됐다.
할매바위를 지나면 아산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반암(소반바위)마을을 비롯해 호암, 영모정, 마명, 선동마을이 자리 잡고서 선인봉과 옥녀봉, 각시봉, 금반등, 병바위, 전자암, 탕건바위, 안장바위 등과 함께 두암초당, 금반옥호, 선인취와 등은 전국 최고의 명당지역임을 증명한다.
도립공원 선운산에 다다르면 작설차를 비롯해 풍천장어, 참게, 복분자 등의 맛집들이 즐비하다.
섬진강, 금강, 만경강, 동진강과 함께 전북의 5대 강으로 유명한 이곳 인천강은 풍부한 먹거리와 명당, 풍류, 고인돌 등으로 고창의 뿌리이다.
▲ 제3코스, 연기마을~미당문학관~검단소금전시관 14.5km (5시간)
선운사 입구에서 장연강을 건너 연기마을입구 강나루식당을 떠나 산림경영 숲쉼터 1코스와 분청사기요지와 연기저수지를 지나는 2코스로 나뉘어 소요사 입구에서 만난다.
장연강 주변에는 항아리막걸리집과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풍천장어, 제첩 등이 선운사를 자주 찾았다는 미당의 시성을 자극한 곳이다.
이어 연기마을은 중국, 일본, 조선의 천자로 내세웠던 보천교의 창시자 차경석(1880~1936)이 소요산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 곳. 그의 부친 차치구는 동학의 접주였으며 차경석은 우연히 증산교 교주 강증산을 만나 교주까지 오르며 동학과 일진회, 1925년 조만식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용산리 분청사기와 가마터는 15세기에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잇는 과도기 형태로써 현(玄)자명의 접시 발견은 왕실과 중앙관청 진상품이며 5개의 소성실이 계단형으로 이뤄졌다.
연기저수지는 김해 김씨의 ‘백허당’ 효자비를 비롯해 연기라는 승려가 창건한 ‘연기사’, 불도를 통달한 응용스님의 전설, 800개의 암자가 있었다는 소요산에는 제비가 깃든 ‘연소혈’자리에 백제 위덕왕대에 개창된 소요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소요산은 소요대사를 비롯해 연기조사, 도선선사 등의 고승이 머물었고 보천교의 차경석, 인촌 김성수, 미당 서정주 등이 정기를 받고 태어난 곳이다.
뿐만 아니라 선운산 경수봉과 마주보고 있어서 형제봉, 걸출한 문장가를 많이 배출했다해서 문필봉으로 불리며 동학 전봉준 장군의 부친이 소요산 암자에서 길몽을 꾸고 전장군을 잉태했다고 전해 온다.
소요산에서 서해바다를 향해 질마재에 오르면 서낭당과 소금샘이라는 옹달샘, 질마샘, 김해김씨 묘, 이재 황윤석 선생이 기거한 서당골, 가리마 고갯길, 그리고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라고 노래했던 미당 서정주와 미당문학관이 있는 질마재이다.
이재 황윤석은 영조시대 호남파 실학의 대가로서 성내면 조동에서 황전의 맏아들로 태어나 18세부터 책을 써내 60여책에 이르고 벼슬과 후학에 여생을 보낸 고창인이다.
미당 서정주는 1915년 선운리 진마에서 태어나 21세에 동아일보 신춘문예 ‘벽’으로 등단해 국화 옆에서, 귀촉도 등 1,000여편의 작품을 남긴 고창의 들 산 바다의 감수성을 발휘한 고창인이다.
선운리에서 용기리로 건너는 좌치나루터를 지나 심원면 하전마을은 전국 최대의 바지락생산지이며 2004년부터 갯벌체험장 운영 등 해수부의 ‘아름다운 어촌 100곳’ 가운데 하나이다.
▲ 제4코스, 검단소금전시관~선운사 관광안내소 12.7km (4시간)
마지막으로 1,500년 화염의 역사와 함께 하는 선운산 길로써 모래 언덕이라는 사등마을은 향후 노을대교가 지나는 곳으로 죽도와 대죽도를 끼고서 선운사 창건의 백제 고승 검단선사와 깊은 인연이 있다. 사등 검당마을에는 8개 가마에서 굽던 육염(자염)생산지인 검당포가 되었다.
이곳은 2009년에 펜션을 짓고서 최근 ‘한 달 살기 프로그램’ 진행과 최초 여류명창 진채선의 생가터 복원사업도 앞으로 과제이다.
이어 선운사로 향하는 길에는 노랑뱀이 많이 있다는 노랭이터의 금산마을, 부처님 상징의 연천, 연곡, 화산마을 및 원불교 교조 소태산의 발상지를 지나 고창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700년 느티나무, 그리고 산길에 오르면 참당암과 녹차밭, 백제가요 ‘선운산가’의 배경인 곳이다.
만 필의 말이 노는 도솔암 첩첩 바위의 만물상과 대장금 촬영지 낙조대와 용문굴, 동학 접주 손화중의 사라진 마애불의 비결책, 내원궁, 진흥굴과 큰바위 얼굴, 장사송, 꽃무릇과 동백꽃 단지, 백파율사의 삶을 기리는 ‘백파율사비’는 조선시대 대명필가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것이다.
우리나라 미술사와 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인 ‘석씨원류’는 성종왕이 주관한 불교서적으로 선운사 관음전에 372판이 보관되고 있다.
고창의 발견 K뿌리 12번째, 질마재 100리길은 굽이굽이 절경이며 고창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보물인 것이다./고창=안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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