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인정하는 고창 고인돌, 풍요의 고장

■고창의 발견 k뿌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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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의 가치발견과 고창다운 문화를 계승한다면 고창군민은 10년 지나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본지는 땅의 역사, 삶의 역사, 정신의 역사를 재조명해 희망의 고창을 만들고자 한다.

고창(K-뿌리), 첫 번째로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과 제단이었던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및 1.8km의 좁은 범위 안에 447기가 존재하는 고창 고인돌이 대표적인 거석문화가 됐다.

청동기시대 고창 고인돌사회의 풍요와 품격에서 우리의 뿌리를 찾고자 한다.

◇ 고창 고인돌과 고인돌에 새겨진 염원

고창읍 죽림과 도산, 아산면 상갑리 일대의 고인돌은 1965년 국립박물관에 의해 발굴 및 1994년 사적 제391호로 지정, 2000년 12월 마침내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지천에 세워진 고인돌은 1983년 아산댐 공사를 비롯해 1999년 서해안 고속도로 건설, 2004년 고창 담양간 고속도로 등 대규모 사업에서 ‘고인돌문화재’가 발목을 잡기도 했다.

고창고인돌은 암석의 데사이트질응회암과 안산반암으로써 성틀봉과 중봉 주변에 23개소의 채석장이 존재해 원석의 전리면 틈을 이용해 쐐기를 박아 떼어내 축조했다.

전국 3만여기, 호남지역에 2만여기 고인돌은 ‘고여 있는 돌’이란 뜻인 지석묘를 우리말로 표현했으며 이 같은 거석문화는 유럽을 비롯해 지중해 연안, 인도, 동남북아시아 등 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하지만 고창고인돌이 세계적인 밀집분포와 탁자식, 변형탁자식, 기반식, 개석식 등 방대한 군집으로 인해 세계유산적(독특하거나 아주 오래된 것)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인간보다 주변 환경에 변하지 않는 바위나 돌의 견고성, 불멸성은 거목, 거석에 대한 숭배와 혼령의 상징적인 안식처, 저승에서도 신분과 지위를 보장해 주는 의미뿐만 아니라 집단들의 협동과 결속력을 다지는 공동체 작업으로도 유추된다.

이는 고인돌이 무덤 외에도 제단 역할, 권위의 묘표석으로도 사용된 것.

고창고인돌은 BC 12세기부터 BC 2세기까지 1,000년 동안 만들어진 청동기 시대의 산물이다.

당시 고창인은 배산임수 지역에 마을을 이루며 돌칼, 돌낫을 이용한 본격적인 농사로 안정적 식량 확보 및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고유한 문화를 만든 것이다.

이 같은 고창의 역사는 철기시대를 맞아 석축분을 비롯해 옹관묘, 석곽, 금동식리, 청자반구호, 철기류 등이 발견된 아산면 봉덕리의 ‘모로비리국’으로 추정되는 마한시대로 이어진다.



◇ 한반도 첫수도 고창론과 고인돌박물관 체험

살기 좋은 고창, 풍요로운 고창에서 갑자기 민선7기 유기상호는 ‘한반도 첫수도 고창’을 슬로건으로 국내외 관심이 집중됐다.

서해안 87km와 노령산맥 방장산을 따라 비옥한 황토와 게르마늄 물, 갯벌 등은 생태환경의 보고를 만들고 최고의 농산물 생산, 귀농귀촌 1번지로써 손색이 없다.

이는 청동기시대의 거석문화, 마한과 백제문화, 그리고 일본, 중국과의 대외교류를 통해 한반도에서 가장 큰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발휘해 온 것이다.

이 같은 농생명문화는 한세트 210만원 경매의 고창멜론을 비롯해 수박, 땅콩, 복분자, 천일염, 지주식 김, 유기농 매일유업, 미래 식초도시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창군은 지난 2008년에 고인돌박물관을 열고서 청동기시대의 유물과 생활상 등을 가상의 정보를 더해 보여주는 AR(증강현실), VR, MR 등의 콘텐츠를 구축 운영하고 있다./고창=안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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