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사선문화제전위원회(위원장 양영두)는 지난 18일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3.1 만세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3주년'을 기념하는 전국학술강연회를 마련했다. /황의봉 객원기자
(사)사선문화제전위원회(위원장 양영두)가 지난 18일 한국전통문화전당 교육실 4층에서 3.1 만세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3주년을 기념하는 전국학술강연회를 열고 한국 학생의 항일투쟁의 역사적 의의를 새롭게 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학술강연회는 (사)사선문화제전위원회와 (사)독립운동가 박승준선생기념사업회, 전북일보, JTV전주방송이 주최했다. 양영두 위원장을 비롯 윤석정 전북일보사장, 김철 JTV보도국장, 한경희 (사)독립운동가 박승준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이태수 임실부군수, 최정길 전북동부보훈지청장, 이강안 광복회 전라북도지부장, 김태진 임실문화원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 날 양영두 위원장은 기념사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해 전북도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힘든 시기를 맞고 있어 많은 분들이 자리를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면서 “애국선열들의 후손으로서 자랑스럽고 오늘 자리가 독립운동의 정신을 되새겨 대한민국의 새로운 발전과 번영의 원동력이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강연회는 나종우 박사(문학박사·원광대 명예교수)의 ‘1920년대 학생 항일투쟁의 전개와 의의’ 기조발표로 포문을 열었다. 또한 김태웅 교수(문학박사 ·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의 ‘3.1 운동 전후 서울 &; 경기 한국인 학생의 자존의식과 차별철폐 투쟁’ 주제발표와 이명화 연구원(문학박사·국가보훈처 특별연구원)의 ‘1920년대 호남지역 항일 학생운동의 전개와 성격’에 대한 발표도 이어졌다.
나종우 박사는 △3·1운동 이후 일제의 통치체제의 변화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의 발전 △1920년대 학생들의 항일투쟁의 전개 등 학생 항일투쟁의 의의에 대해 발표했다.
김태웅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3·1운동 이전 일제의 고등교육 억압과 한국인 학생 자존의식의 양가성’과 ‘3·1운동 직후 일제 고등교육시책의 실제와 한국인 학생의 동맹휴학’에 대해 논했다.
김 교수는 “다수의 중등학생은 물론 전문학생이 거주했던 서울(경성부)과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일제의 탄압과 통제에도 굴하지 않고 만세시위를 주도하거나 동맹휴학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일제의 차별적 교육시책에 저항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1926년 6·10 만세 운동은 학생층의 조직화된 힘이 일제의 민족차별적 교육시책에 따른 일상적 불만과 고유한 독립국가 시대의 민족 자긍심이 어우러진 사회심리가 작용했다”며 당시 투쟁 구호 가운데 ‘일본인 교원에게는 배우지 말자’, ‘조선인 교육은 조선인 본위로’, ‘보통교육을 의무교육’, ‘보통 학교장을 조선인으로’, ‘중등이상 학생 집회를 자유로’ 등을 예로 들어 시대적 배경을 설명했다.
이명화 연구원의 주제발표는 1920년대 호남지역 항일 학생운동의 전개와 성격에 대해 △개벽 잡지에 나타난 호남지역 환경과 사정 △호남지역 3·1운동의 전개 △식민지 통치의 변화와 학생운동의 대응 등으로 풀어 나갔다.
이 연구원은 “1910년대 항일의병과 애국계몽운동을 경험한 일제는 조선인의 항일의지를 꺾어버리고 교육을 통해 식민지체제에 안주시키려 했다”면서 “3·1운동이 전국적이며 전국민적 운동으로 번져가고 여기에 학생들이 큰 역할을 담당하자 일제는 동화교육의 실패로 크게 낙담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광복 이후 가치관의 굴절이나 전도현상이 심화된 시대 상황에서도 학생운동은 순수한 정의감, 진실에 대한 열정으로 정당성을 획득하며 대한민국의 민주화 산업화를 선도하는 한국사회 변혁의 주체가 됐다”면서 “충분한 자료와 연구가 활용되지 않아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이번 토론회를 통해 분명한 문제의식을 깨닫고 지역의 정체성 확립과 그 토대 위에서 앞으로 학생운동의 다양한 관점의 분석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 날 종합토론에는 김종수 군산대 인문대학장과 변은진 전주대 교수, 강인석 전북일보 논설위원 등이 참여했다. /복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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