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발걸음]영대(靈臺)의 기능을 한 고창 송산리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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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렬(고창문화연구회 사무국장·이학박사)







24절기는 태양의 황도 위치 따라 지구를 15° 간격으로 나눠 총 24개로 나타낸 동아시아 기후의 표준점이다. 예로부터 24절기의 태양 관측은 순수한 천문관측을 통해 그 해 농사 일정과 풍흉을 예측하는 점성적 의미를 부여한 제의나 의례를 지내기 위한 중요한 행사 중 하나였고, 이런 천문을 관측하던 곳을 영대(靈臺)라 불렀다. 1417년 9월 5일 조선 태종이 관천대(觀天臺)를 쌓으라고 명하자 예조 서운관이 올리기를, “예전에 천자는 영대가 있어 천지를 측후(測候)하였고”라 기록하였고, 정조 23년인 1799년 11월 26일에 왕이 “영대에 올라 경치를 바라보는 것은 또한 분(分)&;지(至)&;계(啓)&;폐(閉)가 되는 날에 하는데 오늘 날씨가 매우 좋다고 하겠다.”라 하여 영대의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1799년 11월 26일은 양력 12월 22일로 아세(亞歲)라 불리는 동짓날이고, 이 날 정조는 영대에 올라 천문을 관측하였다.

영대에서 춘분&;추분과 하지&;동지 때 천문을 관측하여 구름이나 빛의 움직임 따위를 보고 길흉을 점치는 일은 나라의 중요한 연례행사였다. 위의 분은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을, 지는 하지(夏至)와 동지(冬至)를, 계는 입춘(立春)과 입하(立夏)를, 폐는 입추(立秋)와 입동(立冬)을 말한다. 이러한 조선시대의 영대 개념은 이미 고대 중국의 문헌에도 등장하는 천문관측대이다. 고인돌시대와 비슷한 기원전 2070년에 개국된 하나라에는 청대(淸臺)가 있었고, 그 후 상나라의 신대(神臺), 주나라의 영대, 춘추시대의 관대(觀臺) 등도 시기별로 달리불린 점성을 부여한 천문관측대의 이름이다. 이러한 기록으로 24절기는 당연히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서 나온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중국의 영대와 같은 기능을 한 고인돌은 지금도 고창 곳곳의 구릉이나 마을 주변에 흔하게 남아 있는 천문관측대였다. 고인돌이 천문관측을 하던 영대와 같은 기능을 했다는 것은 기록에 없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 할 것이나 고창지역의 높은 구릉이나 특정 장소에 있는 몇 기만 있는 탁월한 형태의 고인돌을 조사해 보면 알 수 있다. 그 고인돌이 어느 방향을 바라보고 있고, 그 고인돌이 바라보는 위치의 산이나 계곡 등에서 언제 해가 뜨고 지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해석하는데 어려울 것이 전혀 없다. 그러면 고인돌시대 선사인들이 지향하는 의미를 바로 읽을 수 있다.

고인돌은 의미 없는 장소나 방향을 바라보며 축조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해와 달과 별들의 흐름을 통해 밤과 낮 길이를 정밀하게 측정하여 설치한 과학적 원리의 결과물이다. 선사인들에게 있어 밤과 낮의 길이가 달라지는 분기점에 위치한 절기는 계절의 개념이 도입되기 전 시간의 개념이었고, 그 절기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설치한 고인돌은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고 감사드리며, 풍흉을 점치던 성소의 공간이었다. 특히, 24절기 중 춘분&;추분&;하지&;동지의 일출과 일몰 지점은 고인돌의 방향성이 가지는 일정한 패턴이다.

고창 해리 행산마을 배후의 구릉에 장축의 방향이 각기 다른 두 기의 고인돌과 두 기의 바위가 놓여 있다. 한 기의 덮개돌의 장축은 120°와 300°이고, 다른 한 기의 덮개돌의 장축은 70°를 향하며, 반대편으로 두 기의 바위가 240° 방향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을 정밀하게 자른 것이 아니어서 방향의 설정에 있어 약간의 오차는 인정된다. 위 고인돌의 덮개돌 120°는 동짓날 일출지점이고, 300°는 하짓날 일몰지점이다. 특히 120° 방향에서 떠오르는 동짓날의 태양은 탄생과 부활을 의미하는 뜻 깊은 날로 새해를 여는 축제를 위한 제단으로 추정된다. 덮개돌의 장축이 70°인 고인돌은 청룡산에서 하짓날 일출하는 지점을 바라보고, 240°는 동짓날 일몰지점이다. 낮이 가장 긴 하짓날은 지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드리고, 동짓날 일몰은 조상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날이었다. 하지나 동지는 전 세계적으로 천제나 지신이나 조상들에게 제를 올리고 흥겹게 놀고 마시던 축제일로 중국만의 것이 아닌 인류 보편적 문화였다. 고창 행산마을 구릉에 있는 고인돌은 하짓날과 동짓날 천문관측 후 천신과 지신에게 제를 올리던 성스런 공간으로 고창의 선사문화를 읽을 수 있는 고인돌코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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