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하나가 울타리도 없는 우물가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다. 그대로 놔두면 아이는 필경 우물로 빠질 지도 모른다. 이 상황을 본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물으나마나다. 당연히 얼른 가서 아기를 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아이를 구하려 할 때 ‘내가 이 아이를 구해주면 아이의 부모가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 할거야’ 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나의 선행이 알려지면 남들이 모두 나를 칭송할 거야’ 같은 기대감을 가질까? 이런 생각을 가지기 보다 위기에 처한 아이를 보는 순간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였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심성이다. 맹자는 이를 일컬어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 했다. 측은지심은 맹자가 주창한 사단(四端)의 하나다. 인간의 본성(本性)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씨로, 다른 사람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이른다.
쿠팡에서 배송 일을 하는 송진욱 씨의 선행도 ‘측은지심’의 발로 였다. 새벽 5시 경 이른 배송을 위해 구슬 땀을 흘리던 송 씨는 한 남자가 골목에 술에 취해 쓰러져 있던 여성에게 다가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보통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그의 몸이 먼저 반응을 하며 뛰어갔다. ‘모르는 사람이에요. 도와 주세요’ 라는 여성의 다급한 요청에 그는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경찰을 불렀다’며 엄포를 놓으며 남성을 제지했다. 남성이 줄행랑을 친 뒤에도 송 씨는 여성의 곁을 지키며 경찰이 올 때까지 안심 시켰다.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 외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는 그의 측은지심에 경찰이 주었다는 의인 감사장 마저 조심스럽다.
길바닥에 버려진 동전을 모아 15년간 8천만원을 기부 해 온 춘천시 환경미화원들의 마음 또한 측은지심의 다름 아니다. 해마다 남몰래 돈봉투를 놓고 사라지는 전주 노송동의 의인은 말할 것도 없다. 폐지 줍는 할머니의 수레를 앞다투어 끌던 중학생들의 선행은 말없는 측은지심의 산교육이다.
맨프레드 케츠는 ‘리더십 롤러코스트’에서 “잘 베푸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게 산다”고 말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얼마나 가졌는가 가 아니라 어떤 것을 했느냐 하는 것이다.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그 대가에 연연하지 않는 측은지심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연말연시 즈음에 여기저기서 측은지심의 선행 사례들이 쏟아진다. 그들이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게 살기를 바란다. 올 한 해 나는 얼마나 측은지심에 가까운 일들을 했을까? 남은 며칠 반성이라도 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측은지심 가득한 훈훈한 세상을 꿈꾸며!
/권영동(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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