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교 이광사의 삶과 예술혼을 추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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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붓, 외로운 먹-원교(지은이 정강철, 출판 문학들)'는 조선 고유의 서체인 동국진체(東國眞體)를 완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서예가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5 ~1777)의 예술혼과 일대기를 다룬 장편소설이다. 원교는 1775년(영조 31년), 나주 벽서 사건에 연좌되어 친국 끝에 종신유배형을 받아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되었다가 호남 신지도로 이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죽음을 앞두고 이광사는 되뇌었다.“서도(書道)는 큰 도인가 작은 도인가.”붓을 들고 글씨를 쓰는 일이 삶이었기에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생각나고 걱정되는 건 오로지 글씨였다.

소설은 외로움과 진한 먹향이 가득했던 그의 신산한 생애를 추적하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서체를 완성하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한 외로운 예술가의 혼을 섬세한 문체로 그려낸다.

원교의 가문은 폐족임을 자처했다. 집 안의 정자에는 ‘원포(遠逋)’라는 글자의 목조 편액이 걸려 있었다. ‘세상을 등지고 동산으로 달아나다’라는 의미다. 그의 가문은 조선 제2대 임금 정종의 서얼 왕자였던 덕천군 이후생의 후손으로 왕가의 피가 흘렀고, 이광사의 고조부 이경직은 호조판서를, 그의 부친 이진검은 예조판서를 지냈다. 그럼에도 일족은 권력과 거리를 두고 부귀를 삼가며, 서도(書道)를 추구하면서 양명학의 정신을 가다듬었다.“무엇에 써먹기 위해 글을 읽는 것이냐?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 서책을 읽는 데 게을리하지 마라”“욕심을 버리면 누구나 태평한 세상을 누릴 수 있다. 우리 집안은 본디 왕족이었고, 명필 가문이니라. 서도를 지킬 것이며 우리 법도대로 살아가면 된다” 그러나 당쟁의 파장은 집안의 ‘법도’를 단숨에 휩쓸었다. 백부 이진유와 아버지 이진검이 묵숨을 잃었다. 원교에게는 유배령이 내렸다. 함경도 부령에서 7년을, 다시 신지도에서 15년을 살았던 그는 끝내 뭍을 밟지 못했다.

원교 이광사가 어린 시절부터 글씨에 천착할 수밖에 없었던 건 가문의 운명이자, 그의 숙명이었다. 글씨에 재능을 보이면서 이광사는 백하 윤순의 가르침을 받게 된다. 소설의 중반부까지 스승 백하 윤순과의 관계는 예술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스승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한 명의 예술가로서 세계관이 완성되어 가는 순간이다. 스승의 가르침은 잘 벼려진 칼날처럼 언제나 날카롭고, 차갑고, 송곳처럼 허술한 부분을 찌르고 들어온다. 올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이기도 하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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