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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사람이 보석이다

익산은 지난해 예비도시에 지정되었다. 그리고 올 한해동안 다양한 동네, 다채로운 사람들이 모여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한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어 왔다. 익산이 꿈꾸는 문화도시의 목표도 ‘사람이 보석이 되는, 살고 싶은 문화도시’로 잡았다. ‘사람을 보석’으로 라는 목표는 보석도시 익산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도 살리면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라는 문화도시의 방향성도 놓지 않는 최적의 비젼이 아닌가 싶다.

‘나’라는 사람을 보석처럼 여기는 도시라면 한번 몸담고 살아 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더하여 현재의 나 뿐 아니라 역사 속의 한 사람 한사람도 보석처럼 귀히 여기는 도시가 된다면 훨씬 더 사람 냄새나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주, 익산에서는 ‘양곡 소세양의 삶과 학문’을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양곡선생은 익산을 대표하는 인물로 이 지역에 잘 알려져 있다. 이선희의 노래 알고싶어요에 담겨있다는 양곡선생과 황진이의 로맨스, 양곡 집안에 얽힌 벌명당 이야기, 곤암과 양곡 형제의 지극한 효성심 등등, 어쩌면 여기까지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양곡 선생이 16세기 조선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이었다거나 불과 스물넷의 나이에 문과에 급제한 수재 중의 수재였다는 사실, 벼슬은 육조 판서를 두루 거쳐 대제학에 올랐으며, 정2품이상에게만 허락이 된다는 신도비가 용화산 기슭에 있다는 사실들은 양곡 매니아 정도는 되어야 알고 있을 것이다. 어디 이뿐이랴 1521년에는 시재를 인정받아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종사관으로 발탁되었고, 1533년 진하사의 정사가 되어 중국에 다녀와서는 그 공을 인정받아 공조판서에 임명되었다는 사실 등은 심포지엄을 통해 시민들에게 알려졌다. 특히 선생은 황태자 탄생 축하라는 본연의 임무 이외에도 ‘회동관 문금(門禁) 해제’나 ‘조선 출신 환관 명단 확보’라는 임금의 별도 명령도 거뜬히 수행하였다. 문금이 가장 엄격했다는 가정 치세에 사신들이 5일에 한번은 회동관을 벗어날 수 있도록 허가받은 성과는 한중 외교의 쾌거였다고도 할 수 있다. 사행 당시 명나라의 유력가로 부상하던 예부상서 하언(賀言)에게 증서한 시문이 낙향의 빌미가 되었지만, 탁월한 시재로 중국에서도 문명을 날렸다는 사실은 ‘익산이 낳은 글로벌 인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그의 시 1,300여수가 실려있는 『양곡집』의 번역은 현재 진행 중이다. 양곡집은 1977년 민족문화추진회가 작성한 ‘우선국역대상서목’에 포함될 정도의 중요 문집이었다. 실제로 번역작업이 착수된 것은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2019년이다.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자부해 오던 우리에게는 아픈 현실이기도 하다. 사람이 보석이 되는 도시라는 목표를 세웠으니 지금사람, 옛사람 모두 중하게 대접하는 문화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문이화(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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