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꿈이 아닌 꿈처럼

해군 한 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작년 11월에 어학병으로 입대했다. 전입한 지 열흘이 지나 사고를 겪은 부친의 간호를 위해 2주일간 휴가를 낸다. 이후 코로나19 관련 지침에 의해 보름간 격리조치 되었다가 복귀한다. 그때부터 선임병들의 구타, 폭언, 집단 따돌림이 시작되었다. 갑판에 밀어 넘어뜨리기도 하고 죽어라는 폭언을 하기도 했다.

정 일병의 대처 방법은 이러했다. 먼저 카카오톡으로 함장한테 신고했다. 함장은 이들을 분리하지 않고 보직만 바꿔 가해자들과 마주치도록 방치했다. 그가 자해를 하자 함장은 가해자들을 불러 사과하도록 했다. 이후 정 일병은 공황장애 증상을 일으키거나 기절하기도 했지만, 함장은 하선 조치를 하지 않았다. 고소한지 이십 여일 만에 하선해서 그는 정신과에 입원했다. 괴롭힌 선임병들은 징계위원회가 아니라 가볍게 군기지도위원회에 회부 되었을 뿐이다. 그는 6월 8일에 퇴원했고, 18일에 자살하고 말았다. 이러한 일이 이번 달 7일, 군인권센터의 기자회견을 통해 알려졌다. 센터 측은 후임인 피해자와 선임인 가해자를 한자리에 불러 사과시킨 것은 엄연한 2차 가해로 매우 부적절한 조치였다고 비판했다. 진상규명과 관련된 군사경찰의 수사도 매우 의심스럽다고 했다. 가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센터 측은 가해자 신상을 확보하고 함장과 부장을 소환해 수사하라고 요구했다. 생전에 정 일병이 사력을 다해 친 발버둥이 보인다. 신문고 역할을 할 함장은 실은 찢어진 자명고였다. 함장은 스무 살이 넘은 어른들을 순진무구한 아이들로 착각했나. 악수하며 미안하다고 말하면 끝난다고 믿었던 걸까? 인간이 힘 있는 자와 약한 자 앞에서 하는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순진했나? 만신창이가 된 마음으로 정 일병은 두 달간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분노, 좌절, 원한, 억울함, 갑갑함이 가득했을 그의 마음을 떠올려 본다. 항우울제가 이러한 마음들을 없애주지 못했다. 지금, 이 시대 정신과의 결정적인 오류는 바로 이것에 있다. 심리 및 정신치료의 필요성은 알고 있지만, 제대로 깊이 행하는 곳이 드물다. 즉, 자살 고위험군 환자가 정신과에 입원하고 나서 삶에 대한 의욕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삶의 의미를 생기게 하는 그런 약은 없다.

정 일병은 이제 막 정신과에 입원했다. 의료진 중,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얘기를 들어준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시퍼렇게 멍이 든 마음을 어루만져줄 줄 아는 다정함과 현명함을 지녔다. 무엇보다 경청의 힘을 지닌 이였다. 정 일병은 내면 가득한 분노를 하나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서서히 자신을 어루만져주는 힘이 생겨나고 있었다. 지독한 일을 지극한 깨달음으로 바꿀 수 있는 놀라운 체험을 하는 중이다. 이런 치유의 꿈을 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박정혜(심상 시치료 센터장·전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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