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발걸음]싸움은 친한 사람들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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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건희(청소년자치연구소 소장)







일베와 같은 극우 커뮤니티의 유저들과 싸웠던 적이 있다. 오래 전이다. 싸우다 보면 어느 순간 그들이 문제에 직면해서 변할 수 있다고 여겼다. 내공이 조금은 올라갈 것도 같았다. 지난 박 정부 때에 정치적으로 화가 나는 일이 많았다. 페이스북에서도 토론 붙으면 끝장을 보려고 했다. 새벽 1시 넘어 토론 붙어 한두 시간 넘길 때도 있었다. 싸움은 이겨야 했다. 내가 가진 신념이 옳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싸워 보려고 노력을 했다. 연구를 계속 하다 보니 근거를 들이대는 습관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자기 이념에 갇힌 이들과의 싸움 자체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시간 낭비였다.

싸우다가 논리적으로 부족한 측면이나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면서 타자를 이해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런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진보라고 주장하는 이들 중에서도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는 이들과는 배움이 있는 싸움은 없었다. 내가 ‘바보’였다. 싸움은 싸울 대상이 따로 있었다. 내가 말하는 싸움은 상대를 죽이자는 전쟁 같은 일이 아니다. 토론이고 논쟁이어야 하고 그 안에서 나름의 이상과 논리가 있어야 서로에게 긍정적이다. 에너지를 쓰는 만큼 그 만큼의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그제부터 읽고 있는 소설이 있다. ‘순례주택’, 유은실의 소설인데 이 책의 주인공 격인 중학생 수림의 말이 맞다. “싸움은 친하지 않은 사람과 하는 게 아니다.” 싸움은 친한 사람들 즉 말이 되는 사람들과 하는 거였다.

나는 나름대로 평화주의자다. 현장에서 활동가로 삶을 살아가다 보니 치열함도 있고 싸움도 한다. 그 과정이 성찰이 이루어지고 성장이 있는 싸움이 되려면 바보들과는 절대 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 분노만 있을 뿐 그 이상 남는 게 없다. 특히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람들과는 상종을 해서는 안 된다. 진보, 보수 가릴 게 아니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이 오직 자기가 가진 것만 옳고 그 신념을 강조하면서 타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이들의 예의 없음에 질린 경우도 있다. 자신이 떠받치는 이념의 당사자인 아동, 청소년, 장애인, 여성 등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그 이외의 사람들은 어떤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상종하기 힘들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나 또한 이런 모습으로 비춰졌을 수도 있겠다. 청소년이라는 당사자들의 사회적 문제에 분노했고 그들의 아픔에 너무 크게 들어가 있을 때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에 대한 존중은 놓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분노할 때 많았다. 오래 전 나를 돌아보니 나 또한 어지간히 싸우기 싫은 대상일 수도 있었겠다 싶다.

자기 신념에 갇혀 어떤 대상을 우상화 해 버리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대상이나 신념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을 그 곳에 투사하는 일이다. 사회적 약자나 자유경제, 민주주의, 복지국가를 위해서 자신은 희생한다고 하지만 결국 그 주변에 사람들에 대한 존중도 없고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다. 극우 유튜브를 매일 시청하면서 자기 신념을 키우는 이들뿐일까? 그 반대의 ‘끝’에 있는 진영 또한 유사한 일은 많다. 일베와 메갈류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진영논리에 갇힌 정치적 당파성을 갖고 있는 좌우의 끝단에 위치한 사람들도 비슷해 보인다. 대화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반복하지만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는 이들과는 싸워서는 안 된다.

내년도 대선과 지방선거는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가 싸울 대상이 누구이고 상종 말아야 할 이들이 누구인지 선택할 때다. 그 어디에서나 싸움은 존중이 가능한 친한 사람들과 하는 것이다. 싸울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민주주의는 항상 소란스러운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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