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발걸음]메뚜기떼, 그 웅장한 서사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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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란(국립농업과학원 작물보호과 과장)





193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대지(The Good Earth)’는 미국의 여류작가 ‘펄 벅’의 대표작으로, 1937년 영화로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8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는 걸작 영화 ‘대지’는 1930년대 작품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와 영상효과가 뛰어난 작품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순박한 농부 ‘왕룽’이 어떠한 어려움에도 지켜내고자 했던 땅, 그리고 왕룽의 아내 ‘오란’이 평생을 가정에 헌신하며 가족에 대한 사랑과 희생으로 품어온 땅은, 격변의 시대에 가족을 지키고 사회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였다. 혁명의 격랑 속에 굶주림의 참혹함과 우연히 찾아온 행운을 겪으며, 가족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가족을 다시 하나로 맺어준 것은 메뚜기떼였다. 가족과 친척들이 힘을 합쳐 평생 일궈온 땅을 습격해 오는 메뚜기떼를 물리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하게 죽음을 맞는 오란에게,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대지였어.”라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왕룽의 모습은 잔잔한 여운과 함께 카타르시스를 안겨 준다.

흑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후반부를 장식하는 수억 마리 메뚜기떼의 습격 장면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떼를 지어 밀잎을 게걸스럽게 갉아 먹는 메뚜기의 클로즈업된 모습은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2014년 8월 말, 해남에 수억 마리의 메뚜기떼가 나타나 농업인과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겨 준 적이 있다. 25ha(헥타르)의 농경지를 시꺼멓게 뒤덮은 메뚜기떼는 수확을 앞둔 벼와 기장 등을 사정없이 갉아 먹어 큰 피해를 주었다. 나중에 풀무치 약충으로 밝혀지기는 했지만, 당시 해남의 농경지와 도로를 뒤덮은 수억 마리 곤충의 모습은 ‘재앙’이었다.

메뚜기는 성경에 가축 돌림병, 우박 등과 함께 10가지 ‘재앙’ 중 하나로 언급될 정도로 인류에게 영향을 미쳐온 역사가 깊다. ‘메뚜기가 온 땅을 덮어 땅이 어둡게 되었고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이집트)의 온 땅에서 나무와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고 ‘출애굽기’에 기록된 바와 같이 3,500년 전 이집트 지역의 메뚜기 피해는 심각했던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된 기록만 835건에 이를 정도로 크고 작은 메뚜기 피해가 빈발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메뚜기는 성충이 하루에 150km를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활동력이 왕성하고, 1마리가 매일 2g의 작물을 먹어 치운다. 1억 마리의 메뚜기떼가 하루에 먹어 치우는 작물의 양이 약 200톤에 달한다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하다. 메뚜기떼가 지나가고 난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묘사는 지나친 과장이 아니다.

사막에서 많이 발생하는 메뚜기는 비가 내려 초원이 생기는 등 환경 조건이 좋으면 평소보다 많은 알을 낳는데, 그러다가 급격하게 환경이 악화되면 알이 휴면상태가 되면서 부화를 보류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누적된 알이 어느 순간 대발생을 하면서 피해를 키우게 되는 것이다.

최근, 인공위성으로 토양 수분 상태나 초목의 건강도를 분석하고 인공지능으로 메뚜기의 대발생 가능성을 예측하는 등 메뚜기 피해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메뚜기는 인류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2014년 해남의 풀무치 피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로 사막이나 아프리카, 아시아 내륙에서 많이 발생해 오던 메뚜기 피해로부터 이제는 지구촌 어느 곳도 안전할 수 없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 아닐까? 인간은 지구의 주인으로 행세하며 이기적으로 지구의 환경을 지배하고 있지만, 지구환경은 결코 하나의 생물 종에 의해 지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곤충과 미생물, 바이러스들은 언제든 인간을 공격해 올 수 있고 그 징후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다른 생물 종과 공존의 지혜를 찾을 때이다. 메뚜기가 그들이 살던 작은 초원의 영역을 넘어 하늘을 지배하며 웅장한 서사시를 쓰는 이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메뚜기와의 사투에서 땅의 소중함과 우리 삶의 근본을 깨달은 왕룽을 오늘날 우리의 모습에 투영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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