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시인 신석정(1907~1974)은 평생 식물을 사랑하고 정원을 가꿨다. 그가 1961년 매입해 임종까지 살았던 ‘비사벌초사’(전주시 남노송동 175-27)엔 석정이 직접 심고 어루만진 식물들이 아직까지 잘 크고 있다. 팔손이나무, 낙우송, 후박나무, 호랑가시나무, 백목련, 동백, 줄사철나무, 태산목, 모과나무 등이 안채를 굽어보며 인사하듯 서 있다.
키가 5m 쯤 되는 호랑가시나무는 석정의 고향 부안에서 온 것이다. 1963년 전주여고(풍남동) 강당에서 열린 전북 특산물행사에 출품됐던 명품 호랑가시 나무 한 그루에 맘을 빼앗긴 석정은 전시회 파한 후 막내아들 신광남 씨(75·당시 중학교 1학년)를 시켜 가져오게 해 자신의 정원에 들였다.
태산목과 백목련은 1960년대 말에 구했다. 그때로선 귀한 수종이었으나 전주의 유명 결혼식장인 봉래원예식장 주인이자 조경사업을 하던 한봉수 사장에게 특별히 부탁해 심었다.
백목련이 피는 4월이면 하필 봄비가 와 하얀 꽃잎을 땅에 떨궈버리곤 했다. 이를 애석히 여긴 석정은 비 소식이 들릴라치면 장대에 묶은 우산을 땅에 꽂아 당시 아직 키 작던 백목련 위에 씌워 꽃을 보호하면서까지 그 향과 아름다움을 사랑했다. 석정이 병상에서 남긴 마지막 유작시 ‘가슴에 지는 낙화소리’는 백목련 꽃 필 때 문병 온 친구와 술 한 잔 나누지 못하고 돌려보냄을 안타까와 하는 내용이었다.
모과나무는 기린봉 선인사 부근에 있던 것을 1970년 제법 비싼 값을 주고 캐온 것이고 정문 입구 화단 지킴이인 자연석 두 개는 시인 이목륜이 석정 부탁으로 손수 경운기 핸들을 잡고 소양에서부터 전주까지 실어날랐던 것이다. 메타세콰이어로 오인되는 키 큰 나무는 낙우송(落羽松)이다. 석정은 단풍 든 낙우송 잎이 갈바람에 흔들릴 때면 “불꽃이 춤춘다”고 한참 바라보곤 했다.
비사벌초사의 남천은 키가 무척 크다. 석정이 평소 식물에 가위 대는 걸 싫어했기 때문에 자연히 키다리가 됐다. 담벼락엔 녹색 시누대도 있다. “아무리 쪼들리고 / 웅숭거릴지언정 / - ‘어찌 제왕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대바람 소리’)던 바로 그 대나무다.
석정의 정원은 곧 시원(詩苑)이다. 이 곳 나무들은 석정의 분신이며 석정의 정신이다. 비사벌초사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설지도 모른다 하니 지주들 권리를 남이 좌우할 순 없으로되 한번 형해화(形骸化)시킨 다음엔 아무리 고결한 자취라도 돌이키기 쉽지 않음을 명심했으면 한다. / 임용진(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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