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의 둠벙은 가뭄이 오면 물이 말라 육지로부터 공급받아 사용한다

[최선우의 둠벙과 농생태 이야기] 18. 한국 최남단 마라도의 둠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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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도 지나니 이제 더위도 한풀 꺾이기를 기대한다. 여름휴가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깊은 밤 즈음엔 찬 기운이 느껴지고, 풀벌레 소리도 다양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잠결에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 한 자락이 전에 다녀온 제주도를 떠올린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비옷을 연상시키는 영국도 아니건만,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이상하다. 영화 속에서 보는 비 내리는 영국은 회색빛으로만 보이는데, 비 내리는 제주도는 연둣빛이 돈다. 바다 안개로 사이로 형체만 살짝 보이는 성산일출봉도 연둣빛이다.

비가 개어 배가 운행하는 날이었다. 우리나라 최남단에 있는 둠벙을 찾아 마라도를 찾았다. 파도가 심하다. 낮게 옆으로 퍼진 가파도를 지나 살레덕 선착장에 도착한다. 걸어 올라가니 초원이다. 예전엔 숲으로 덮여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한쪽만 낮은 관목들과 선인장이 자리하고 있고 대부분이 낮은 풀로 덮여 시야를 가릴 것이 없다. 섬 위의 초원, 바다 그리고 하늘뿐이다. 멀리 산방산이 보인다. 순간 마음이 탁 트인다.

둠벙이 보인다. 마라도 해발고도는 39미터이다. 낮은 섬 전체가 보이지 않는 물로 덮여 흐르고 있었다. 섬 전체를 덮고 있는 낮은 풀들은 흙과 함께 물을 머금고 있다. 잔디 줄기는 엉키고 설켜 밧줄 그물망을 엮어 쌓아 둔 것처럼 두꺼운 층을 이루고 있다. 일이년만 형성되지 않았다. 밟으면 스펀지를 쭉 짠 것처럼 물이 올라온다. 샌들을 신고 있는 발은 그 사이 물에 젖었지만 시원하다. 발을 떼면 풀줄기가 콜라겐처럼 탄력을 받아 다시 올라온다. 그 아래로 흐르는 물이 보인다. 물은 둠벙으로 계속 흘러 들어가 고인다. 물부족을 해결하려고 물웅덩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방문 당시 섬 전체가 푸른 빛으로 빛나고 하얀색, 노란색, 붉은 색 꽃들이 여기저기서 한들거려 물이 풍족해 보였다. 그러나, 가뭄이 오면 물이 마르기에 지금은 육지로부터 물을 공급 받아 사용한다고 한다. 둠벙 주변에 모터도 파이프도 보이지 않는다. 물을 끌여 사용한 흔적이 없다. 다만 누군가가 관리하는 흔적은 있다. 물이 흘러 내려가게 돌 몇개로 배출구 만들고 주변을 정갈하게 정리하여 두었다.

둠벙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잠자리와 새가 날아들고 있다. 새들이 연신 둠벙 위로 빠르게 나르며 무언가를 찾고 있다. 그들이 찾을 법한 물고기는 보이지 않으니 잠자리를 잡아 먹을 요량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잠자리가 새를 피해 다른 곳으로 갈까. 새 못지 않게 빠르게 날아 움직인다. 잠자리는 새를 의식하지 않는 듯 열심히 산란을 하고 있다. 감출 것 없이 그대로 투명하게 보이는 깨끗한 물속에도 무언가 먹을 것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긴... 물만 고여 있어도 온갖 생명들이 찾아 들어 둥지를 트는데 이 외딴섬 둠벙이라고 먹을 것이 없을까?

주변만 천천히 어슬렁거려 본다. 나는 오늘 이 섬에서 선녀가 내려 온 듯한 둠벙을 만난 것으로 충분하다. 이 곳에 어찌어찌한 연유로 다시 오게 될 터인데, 왜 굳이 오늘 모든 것을 다 담아내지 못함을 탓하려 하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그 곳에서 보았던 붉은 엉겅퀴 꽃이 피어 있을까 궁금하다.

/전북도농업기술원 연구개발국 농업환경과 농업생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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