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71년…“이 땅에 전쟁은 두 번 다시 없어야”

참전유공자 강문수 옹에게 듣는 “그 때, 그 날” 참혹했던 1950년, 낙동강부터 신의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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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참전유공자 강문수(93)옹이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강 옹은 1950년 무공화랑훈장을 수여받은 바 있다.



“탕탕탕탕”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총탄이 아군을 향해 빗발치듯 쏟아졌다. 적들이 던진 수류탄은 “쾅” 굉음을 내며, 바로 옆에 있던 전우의 목숨을 앗아갔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맞서 싸워야만 했다. 이 전선이 돌파되면 아군의 최종 방어선이 무너지는 탓에 물러날 곳이 없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공방전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날아온 총알이 가슴에 박혔다.

숨을 쉴 때마다 솟구치는 피가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고통이 밀려왔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적들을 향해 한 번이라도 더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었던 1950년 여름. 당시 18살이었던 강문수(완주 소양면)옹은 국군 1사단 12연대 소속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낙동강 전선에서 부상을 당한 강옹의 가슴에는 아직도 그 날의 상처가 남아있다. 70여 년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전쟁의 참혹함은 잊혀 지지 않고 있다.

한국전쟁 71주년을 맞아 24일 만난 강옹은 그 때의 기억을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기억했다.

1948년 가을 스스로 군에 지원한 그는 당시 국방경비대 소속으로 여수와 순천, 지리산 등에서 빨치산들과 전투를 벌였다. 이후 국군으로 편입된 그의 부대는 전쟁이 나기 전까지 황해도 개성 송악산에서 주둔하고 있었다. 마침내 6월 25일 북의 기습 공격으로 전쟁이 발발했다.

김옹은 “전투를 반복하며 낙동강까지 퇴각하게 됐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우리 부대는 낙동강에서부터 서울, 개성, 평양을 거쳐 평안북도 신의주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했어. 하지만 통일을 목전에 두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퇴각할 수밖에 없었지”라고 했다.

이어 그는 “전쟁이 길어질수록 옆에 있던 전우들이 하나 둘 씩 사라져 가는 모습에 두려움이 컸다. 적의 총알을 맞고 부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진 나는 운이 좋았던 게지. 살아남아서 가족들을 다시 볼 수 있었으니”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내 생에 통일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후손들은 꼭 평화통일을 이뤄야한다. 전쟁의 참혹함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내 자식들과 손주들이 살고 있는 이 땅에 두 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강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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