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아침]맛깔스런 우리말의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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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중(군산대 자문교수)





지난해부터 코로나 19에 시달리다가 맞이한 계절의 여왕 5월인데도 마냥 좋아하고 환하게 웃을 수만은 없는 초록의 시절이다. 신축(辛丑)년 하얀 소띠의 해도 4개월이 지나갔다. 辛丑은 매운 신(辛) 소(牛)가 아니라, 우리들 곁에서 농부들을 돕고 살다가 자신의 모두를 송두리째 주고 가는 정겹고 순박한 새하얀 우공(牛公)이다. 우리나라에서 하얀 소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하얀 황소의 유래는 그리스로마신화에서 포세이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빗 게으른 우름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를 기억해보자. 황소는 누런 소를 말하는 명칭이었을까? 얼룩송아지의 노랫말처럼 송아지가 엄마를 닮은 것은 당연한 생리학적 진리다. 얼룩송아지의 모습은 흰 바탕에 까만 반점이 여기저기 그려진 모양이 아니라, 털빛이 얼룩얼룩한 송아지를 이른다. ’황소‘의 사전적 의미는 ’큰 수-소(수컷 소)‘라는 뜻이나, ‘황’의 의미가 여기서는 누렇다는 뜻이 아니고, 우리말 ‘크다’라는 ‘한(大)’에서 온 것이다. ‘한’은 한밭, 한길, 할(한)아버지 등의 단어에서 보듯 크다는 의미다. 그러기에 황소는 누런 소가 아니고 ‘큰 소’라는 뜻이다.

이렇게 말(어휘)에 특별히 문제가 없다하더라도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이 단어 활용의 착오를 불러올 수도 있다. 현대젊은이들이 흔히 사용하는 줄임말들이 기성세대를 당황시킬 때가 종종 있다. 일제 말기에 우리말 사용 탄압정책을 폈던 것은 민족의 혼이 담긴 국어에서 존립을 무너뜨리려는 그들의 술책이었던 것이다. 몇 단어의 어원을 더듬어보자.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의 미루나무 가지치기의 ‘미루나무’는 미국에서 건너온 버드나무라는 미류(美柳)나무가 그 어원이다. 양복(洋服)이 우리들 생활 속으로 들어온 것은 1896년 고종 때 칙령으로 육군복장 규칙을 제정하면서부터 입게 되었으니, 벌써 1세기가 훌쩍 지났다. 양옥(洋屋), 양장(洋裝), 양주(洋酒), 양궁(洋弓), 양말(洋襪)처럼 서양에서 건너 온 증거로 洋(양)자를 앞세워 썼다. 껌(gum)이나 고무(gum)처럼 같은 말이라도 경로에 따라 달라지듯, 외국어가 우리나라로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에서 변질된 것들이 생활 속에 묻혀 발음이 변질된 채로 그대로 쓰인다. 이처럼 수백 년 전에 수입된 연혁을 지니면서 우리말로 동화된 것들이 상당하다.

전통한복에서 유래된 것들이다. 한복에는 단추와 주머니가 없다. 단추대신 옷고름이 있고, 주머니 대신 매달고 다니는 복주머니가 있다. 그 매달고 다니는 복주머니가 불안해서 만든 것이 소매를 넓게 만들어 소지품이나 동전을 넣도록 활용했다. 그 소매 속에 들어 있는 물건이 탐나서 치고 가면서 훔치는 사람더러 우리는 ‘소매치기’라 부른다. 소매치기나 날치기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구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한복은 명절 때만 입거나, 지금은 생활한복으로 간편하게 개량해서 입는다. 웃옷의 앞자락을 ‘오지랖’이라 한다. 앞자락이 넓어 가족들과 식사할 때, 밥상위의 음식들을 쓸고 다니게 되면 옷에 음식물이 묻어 세탁을 해야 한다. 남의 일을 앞장서서 돕거나,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지 않았는데도 참견하는 사람을 오지랖이 넓다고 말한다. 하나 더 붙여 얘기해보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의 옷깃에서 ‘깃’은 목 부분을 두른 곳이다. 상대와의 옷깃이 스칠 정도라면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쳐야 한다. 그 정도의 거리라면 상당한 인연이리라. 옷깃은 옷자락과는 부분의 위치가 다르다. 옷자락이나 치맛자락은 옷의 끝부분을 가리킨다.

활동 영역이 넓은 사람을 ‘마당발’이니 ‘왕발’이라고 하는 표현이나, 누구의 며느리는 ‘손이 커서’ 음식을 푸짐하게 준비 한다.라고 하는 표현은 우리 조상들이 현실은 가난했으나, 마음은 넉넉한데서 발상된 언어구사의 실상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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