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종상(자연삶연구소장)
올 5월 11일은 동학농민혁명 127주년 국가기념일이다.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1월 고부농민봉기를 시발점으로 평등, 자유, 자치의 원칙에 기초한 반봉건 항쟁이자 외세를 퇴치하기 위한 민족자존의 결사 항전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이 비록 뜻은 이루지 못했어도 그 시대정신은 계승·발전되어야 한다.
우리는 인류 문명사 중에서 가장 앞선 요하문명의 홍산문화와 흥망성쇠의 변곡점이 많은 역사를 갖고 있다. 1984년 10월 31일 중국 고고학계가 충격에 빠진 사건이 있다. 만주벌판 요하에서 황하문명보다 1,000년을 앞선 요하문명이 발굴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동안 중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만리장성 북쪽의 이국땅, 옛 고조선의 영토에서 B.C 3,500년경 초기국가 형태의 홍산문화 유물인 여신상, 신전, 제단과 적석총, 석관묘 등이 발굴되었다. 중국이 황하문명을 유일 기원론으로 줄기차게 내세웠던 입장을 바꿔 ‘요하문명이 중화문명의 시원이다'는 동북공정을 펴는 것은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와 다를 바 없다.
1591년 3월(선조 24년),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정벌할 속셈으로 조선 통신사 편에 서신을 보내 명나라를 정벌하는데 필요한 길을 빌려달라고 요구해왔다. 조선이 거절하자 이를 구실로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의 영토를 침탈했다.
1882년 5월 22일 조선은 미국과 부당한 처사나 모욕 또는 일방이 워협을 당했을 때 다른 일방이 중재에 나선다는 내용을 담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고 고종은 춤을 추었다. 1905년 7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부장관 태프트를 일본에 보내 가쓰라 일본 내각 총리대신과 미국은 필리핀 지배를, 일본의 조선지배를 상호 교차 승인하는 ‘가쓰라 테프트 밀약'을 체결했다. 같은 해 9월에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중재한 일본과 러시아가 맺은 러일전쟁의 강화조약인 포츠머스조약에도 한국에 대한 일본의 우월권이 인정되었다. 철석같이 미국을 믿었던 조선은 미국에게 철저히 농락당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일제식민지 역사는 1910년 8월 한일병합조약에 앞서 1905년 11월 체결된 을사늑약으로 외교권 박탈과 통감부가 설치되어 사실상 40년의 일제식민지 역사가 시작되었다.
일제는 19세기 말 부패한 봉건왕조가 그랬듯이 온갖 구실을 만들어 백성을 수탈하고 한반도를 태퍙양전쟁의 병참 기지화했다. 일본군 성노예 인권문제와 일제 강제징용노동자문제 등 오늘날에도 골이 깊게 파인 아물지 않는 상처는 한국인이 해결해야 할 숙명이 되었다. 현재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도 일제식민지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연산군 이후 4대 사화와 선조 때 격화된 당쟁으로 중앙 정계의 혼란과 국가재정 파탄으로 이이의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조차 수용할 수 없었던 쇠락한 나라. 19세기 말 세도정치로 중앙정치의 문란과 부세제도인 전정, 군정, 환곡 등 삼정문란을 틈탄 지방관들의 농간으로 수탈을 견디다 못해 화전민이나 거지떼로 전락한 농민이 속출하고, 내우외환이 있을 때마다 외세를 불러들이는 관습적인 외교는 나라를 폐망의 길로 인도했다.
동학농민혁명은 민주주의와 자치, 자위권 행사의 실천적인 민중혁명이다. 12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날의 시대정신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 아쉽다. 동학농민혁명의 주체가 우리에게 부여한 과제는 부민강병(富民强兵)이다. 부민강병은 정의와 공정, 평등이 바탕이 되어야 실현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창조적인 개혁이다. 우리는 화성 우주여행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산업사회를 이끌고 미래사회를 개척할 산업 역군과 조직이 필요하다. 가수 BTS, 영화감독 봉준호, 배우 윤여정, 축구 손흥민 등 한국이 배출한 여러 문
화·스포츠 월드 스타가 한류의 꽃을 피우고 있다. 개개인의 특질을 살린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 양성을 위한 교육체질개선으로 공시(公試) 등 인적자원의 쏠림현상을 해소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측근과 친인척이 연루된 공직사회의 매관매직·채용비리설 등 잡음이 시민사회에 심심찮게 회자되고 있다. 혁명가 전봉준 지도자가 지하에서도 잠 못 이룰 일이다. 사법기관이나 검찰, 경찰에서 시행하고 있는 공무원 승진시험제도 부활과 계약직근로자 채용 공영심사제 도입이 필요하다.
철학은 영혼의 집이다. 기둥이 썩으면 작은 외풍에도 집이 쉽게 무너지듯 허술한 집애서는 영혼이 머물 수 없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은 80년대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판박이다. 군부의 민간인 학살 만행은 절대 민중의 희망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이 역사적인 교훈이다. 미얀마 시민에게 오늘의 희생을 내일의 용서로 답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Stop! Myanmar civilian massacre(멈춰! 미얀마 민간인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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