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락]기억공유회 "내 삶에 세월호라는 배 띄우기"

기사 대표 이미지

기억공유회 "내 삶에 세월호라는 배 띄우기"

- 0n년생에게 세월호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추모캠페인에 참여할 때 드는 생각들



0n년생에게 세월호란 기억

근일 : 현장체험학습 갔다온 직후였는데, 실종자가 사망자로 바뀌는 뉴스를 볼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볼 때마다 우울했었다. 세월호 참사는 그때 당시에는 그 무력하고 부실한 대처에 대해서 정말 화가 났었고, 지금도 추모 캠페인을 볼때면 다시 그때의 기분이 돌아와서 슬퍼진다.



0n년생에게 세월호란 기억

세인 : 11살이었는데, 어린 나이에 18살, 19살 고등학생들을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당시에는 그 상황을 공감을 못했다. 그런데 지금 18살이 되고보니 전혀 어른이 아니었고, 너무 어린 나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를 안고 가족들이 뉴스를 보며 우셨었는데 그 참사 당시에 왜 그러셨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조금 더 커보니 이해가 간다. 추모 캠페인에 참여하며 4,16 세월호 사건을 잊지않고 계속해서 기억하며 희생자분들과 유가족분들의 마음을 공감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0n년생에게 세월호란 기억

다빈 : 당시에는 심각성을 크게는 못느꼈는데 해를 거듭하면서 관련영상을 보면서 사건의 심각성을 알아갔다.



0n년생에게 세월호란 기억

소정 : 그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어서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걱정 되었고, 나에게는 언니 오빠들이어서 사실 그 나이때는 어른들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18살이 되고 나니까 더 어린날에 철없었던 생각들이 반성이 되었다. 추모 캠페인에 참여하며 4월 16일 마다 7년 전 그 날의 일들이 뉴스로 보일 때, 그리고 추모 행사를 볼 때마다 내 또래의 언니, 오빠들의 일이 생각나 마음이 먹먹해진다.



0n년생에게 세월호란 기억

한울 : 학교에서 선생님이 먼저 이야기 해줬다. 며칠 지나서 세월호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편지를 쓰는 활동을 했다. 어린 마음에 대충 쓰려고 했다. 다시 생각하면, 제대로 썼어야했다.



0n년생에게 세월호란 기억

진영 :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수련회도 못가는 마음에 ‘왜 못가지?’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좀 시간이 지나니까 페이스북에 세월호 당시 언니 오빠들의 영상들이 올라와서 그런 것들이 올라오면서 눈물도 났고, 심각한 참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추모 캠페인에 참여하며 달그락에서 한 배 접기 캠페인과 손 글씨 쓰기 캠페인을 하면서 세월호 사건을 절대로 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캠페인이 매년 4월마다 있어서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이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0n년생에게 세월호란 기억

선우 : 학교에서 이야기 들었을땐, 그때는 생각이 없었다. 며칠 지나 보니까 학생들이 몇백명이 다 죽었다고 하니 안타까웠다. 4월마다 세월호 추모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매년 점점 더 피해자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편지를 쓰면서 잊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0n 년생에게 세월호란 기억

동규 : 그때 당시에는 사실 학교에서는 크게 많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와닿지 않았다. 한 3일 정도 지나고 보니까 기사가 뜨기 시작했을때 그때 어떻게 하면 그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의심했고 믿을 수 없었다. 4월 16일이 다가올 때마다 세월호 관련 기사들과 세월호 당시 일어났던 사건들이 생각나고 세월호에 대해 생각해보면 아직도 눈물이 나온다. 세월호 관련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0n년생에게 세월호란 기억

해빈 : 그때 초등하교 5학년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 당시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집에가서 그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전원구조가 될 줄 알고 있었는데, 전원구조가 아니라는 사실에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수련회를 가기로 했는데 세월호가 터져서 못갔는데, 그때는 어린 마음에 그게 너무 속상했다. 다른지역으로 못가고 군산 지역으로 갔는게, 그 날에는 뭔가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그 기억이 부끄러웠다. 4월 마다 하는 행사들은 뭔가 의무적으로 진행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리본 만들면 봉사 시간 준다고 했을 때 사전 설명없이 무턱대고 리본 만들면 봉사시간 준다는 것이 세월호 참사 어떠한 활동의 도구가 되는 듯 한 느낌이 들어서 화가 났다.



0n년생에게 세월호란 기억

민성 : 세월호 참사 당시 4학년 교실에 있었는데 선생님이 알려주셨다. 큰 배는 생각도 못하고 중간사이즈의 배가 침몰 한줄 알았다. 얼마 뒤에 구조 되었다고 말을 해주셨다. 우리 나라가 구조도 빠르다고 생각했다.그게 허위기사가 떴다고 해서 우리나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면 저런일이 일어나지? 생각했다. 세월호 추모 캠페인이 유가족 분들에게 큰 힘이 된다고 생각했다. 한 3년 까지는 그랬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냥 리본을 달고 하는게 너무 형식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ASPECT 청소년기자단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