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우의 둠벙과 농생태 이야기] <2> 곡우의 통수식. 둠벙은 전북의 방언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 모든 곡물이 잠을 깨는 곡우에 ‘씨앗 비’ 없어 둠벙을 파 천지신명께 풍년농사를 기원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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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온 산이 유난히도 빛이 난다. 촉촉하게 내린 봄비가 적시며 지나간 자리에 다양한 연둣빛으로 물든 신록이 푸르다. 때맞추어 비가 내렸다. 뿌리 사이로 스며든 봄비를 있는 힘껏 쭈욱 빨아올린 나무마다 새잎을 활짝 펼치고 마음껏 색깔을 자랑하고 있다. 빗물은 모여 개울이 되어 흐르고 하천으로 흘러가겠지. 나뭇잎이 자리를 잡을 때쯤이면 논농사 준비가 시작된다.

4월 20일 그제는 백여 가지 곡식을 윤택하게 하는 봄비가 내린다는 곡우였다. 곡우는 청명과 입하 사이에 위치하는 이십사절기의 하나이다. 예전에는 청명 즈음에 논에 가두어 둘 물이 새지 않도록 논둑 정비를 하곤 했다. 논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아 물이 담수되어 있기도 하지만 흘러가기도 한다. 겨우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서 갈라지거나 터진 논둑을 그대로 두면 물의 손실이 크기 때문에 다시 쌓는다. 이를 가래질이라고 하여 가래로 흙을 떠 옮기면서 논둑을 쌓았다. 요즘은 논두렁조성기를 이용하여 매끄러운 논둑을 빠르게 만들 수 있다. 그 사이 곡우가 기다리고 있다. “곡우에는 못자리해야 한다”라는 옛말이 있듯이, 예로부터 곡우 앞뒤로 볍씨를 담그고 못자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못자리를 만들고 모내기 준비를 하려면 물이 필요하므로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라는 옛말도 있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는 곡우에 가뭄이 들면 그 해 농사가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비가 오지 않아 봄 가뭄으로 애가 타지 않도록 모내기 준비를 위해서 충분한 물이 확보되어야 한다.

얼마 전 농가 현장 기술지원 출장길에 메마른 농수로에 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언제부터 물이 들어왔어요?” “오늘부터요. 시원하게 흘러가네요. 본격적으로 내려보내기 전에 사전 점검하는 겁니다. 이제 우리도 논에 물 댈 준비를 해야지요.” 논농사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다. 온천지에 말간 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용수로로 물이 흐르기 시작할 때쯤이면 각 지역에서는 우리나라 농업용수 공급을 책임지는 한국농어촌공사와 함께 농업인뿐만 아니라 지역주민까지 모여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통수식을 개최한다. 1927년 시작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백파 통수식은 대표적인 기념행사이다. 대한민국 식량창고로 알려진 호남평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수문을 연다. 댐에 담수되어 있던 물은 일 년 농사의 안녕을 기원하며 일제히 뿜어내기 시작한다.

모든 농경지로 이 물이 흘러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상수도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은 우물을 파 물을 공급하듯이, 용수로가 아직 연결되지 못한 천수답은 자체적으로 농업용수 공급을 해결해야 한다. 주변 흐르는 하천물 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못의 물을 끌어들여야 한다. 이마저도 여의찮은 곳에서는 인위적으로 사람이 나서서 웅덩이를 파고 빗물 또는 흐르는 물을 끌어들여 저장하거나, 샘물이 솟아나는 자리에 웅덩이를 파 물을 가둔다. 물웅덩이를 만들어 미리 물을 확보하려는 노력이다. 곡우 이전부터 비가 많이 올 때 물을 가두어 둘 수 있다면, 갈수기에 긴히 활용할 수 있다. 이를 전라, 충청권에서는 둠벙이라고 부른다. 전라북도방언사전에 따르면 군산, 남원, 완주, 정읍, 고창, 김제 등지에서 둠벙이라는 방언을 사용해 왔다고 한다. 표준어는 물웅덩이이다. 서울권에서 잘 사용하지 않기에 표준어로 지정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우리 지역에서는 정감 가는 말임은 분명하다.(최선우, 농학박사, 전라북도농업기술원 연구개발국 농업환경과 농업생태실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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