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 광주 쌍나팔 화백과 해피

서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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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때의 일이다. 광주의 전남일보에 ‘쌍나팔’이라는 시사만화를 연재한 임병성이라는 화백이 있었다. 그분은 당시에 동아일보 ‘고바우’라는 시사만화에, ‘경무대 똥 푸는 사람도 귀하신 대접을 받는다.’고 풍자하여 사법 처리된 김성환 화백과도 같은 분이었다. 한번은 이승만 대통령이 광주에 내려와 언론인들과 간담회를 하는데 그분을 가리키면서 ‘자네는 왜 그리 목이 뻣뻣한가?’라고 물어 그 뒤부터 별명이 ’뻣뻣이‘가 되었다. 그분으로부터, 재색바탕에 하얀 원형 반점들이 있는, ‘해피’라는 강아지 한 마리를 받았는데 귀족의 기품이 역력하고 영특한 개였다. 그 강아지를 주시면서 얽힌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그분의 처가는 적벽 강으로 유명한 화순 동복의 오 씨 가문이다. 그곳에 오재봉 이라는 큰 처남이 광주에서 낙향하여 이 강아지와 함께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 재봉 씨나 할머니가 밤에 마을 경로당에 갈 때면 이 강아지가 주인이 나올 때 까지 신발을 깔고 앉아 따뜻하게 해 놓는단다. 하루는 재봉 씨가 광주에 나가고 없었는데 비 오는 날 밤 들에서 마을을 향해 강아지 짖는 소리가 계속 들리더란다. 마을 사람들은 이 강아지가 보통 강아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슨 일인가 하고 횃불을 켜들고 들녘으로 나갔더니 할머니가 논길에 숨진 채 쓸어져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를 동리 뒷산 양지 바른 선산에 모셨는데 이 강아지가 아침마다 산에 올라가 할머니 묘소를 빙 빙 도는 것이다. 사회가 메마르고 반인륜적 범죄가 난무하는 이 패역한 시대에 해피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재봉 씨는 욕심을 낸 매제에게 이 강아지를 주었고 그분이 이 년여 키우다가 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우리에게 주게 된 것이다. 우리가 이분을 만나게 된 인연도 기이 했다. 오재봉은 당시 광주에서 내가 다니던 조그만 교회의 교우였다. 그런데 그분이 갑자기 중풍으로 떨어져 동복 고향으로 낙향 하였다. 일 년이 지난 어느 봄날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두 시간 여 화순 비포장 너릿재를 넘어 그분이 사는 동복 연월리를 찾았다. 동복은 적벽강이 흐르는 매우 아름다운 곳으로 김삿갓이 이곳에서 시 한수를 읊으면서 죽은 곳이다. 내가 연월리 마을 어귀에 도착 했을 때 마을사람 몇 분이 석양에 들을 가로 질러 달려오는 나의 오토바이를 유심히 쳐다보고들 있었다. 그 가운데 긴 장대를 짚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는 분이 있었다. 그가 바로 오재봉 이였다.

그는 이미 폐인이 되었고 몰골은 병색이 완연했다. 나는 그날 밤 그의 초가집에서 하룻밤을 함께 지냈는데 병든 그가 홀로 거처하는 방은 누추했고 냄새는 썩 좋지 않았다. 임병성 씨가 이런 이야기를 처남에게서 듣고는 ’세상에는 이런 친구도 다 있다니’ 하면서 나를 한번 만나길 원하셨단다. 할머니의 일 주기였던 4월 어느 날, 그해엔 유난히도 진달래가 온 산을 빨갛게 수놓고 있었다. 이날 우리는 그분을 할머니의 묘소에서 만나게 되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해피는 우리 집에 오게 되었고 5.18 나던 해 이른 가을 우리는 해피랑 함께 남원으로 이사를 왔다. 하루는 건축자재를 사러 광주에 다녀왔더니 일하는 인부들이 ‘강아지가 별놈’이라고 하였다. 맛있는 고기를 던져줘도 침만 흘리지 먹질 않더라는 것이다. 해피는 말 그대로 우리가 준 음식 외에는 어떤 음식도 먹질 않는다. 그런데 해피가 거실 한쪽에 새끼를 낳은 뒤 주방 싱크대위에 놓은 음식을 몰래 가져다 먹는 것이다. 그에게는 새끼들에게 줄 젖이 필요 했던 것 같다. 새끼를 먹이기 위해서는 도둑질도 마다하지 않던 그의 모성애에 우리 내외는 감동했다. 해피는 그 뒤 우리와 함께 이년을 더 살다가 노환으로 내 품에서 잠자듯이 숨을 거두었다. 친구를 잃은 세 얘들의 슬픔, 집안의 적막했음을 어떻게 표현하랴.

해피가 간지도 벌써 39년이 지났고 내 나이도 80을 넘었다. 지금 이역 어느 곳에서 잠들어 계신 그분들, 모두 그리웁고 그립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있다)라고는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추억과 그리움의 쪽배를 타고 흘러가는 것인가.



서호련 수필가는



*고대경영전문대학원 경영학석사(MBA)

* ‘한국작가’ 문학상으로 등단

* 저서 '지리산의 새벽'

* 남원 국일회계사무소 대표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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