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연(서예가,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초빙교수)
정읍시 태인면 태창리에 위치하고 있는 피향정(披香亭, 보물 제289호)은 호남제일의 정자라 불리운다. 그 이유는 조선 중기 목조건축 양식의 아름다움과 주변에 피는 연꽃과의 조화로운 정경, 신라의 대문장가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년 ~ ?)과의 인연 때문이리라. 이 정자가 초창된 시기에 관한 정확한 문헌은 없지만 신라 제50대 정강왕 2년(887)에 최치원이 중국에서 돌아와 태산군수로 부임하여 8년동안 재임하던 중에 풍월을 읊고 소요하던 연못가에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이후 고려 현종 때 증축, 조선 광해군 때 현감 이지굉(李志宏,1584 ~ ?)이 중건, 현종 때 현감 박숭고(朴崇古,1615~1671)가 건물 확장, 그리고 1716년(숙종 42)과 1882년(고종 19)에 중수하였고, 6·25전쟁 후에는 태인면사무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1972년 주변의 신축공사후 1974년 단청공사를 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피향정과 최치원의 관련설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신라 고운 최치원이 스스로 서쪽에서 배워 얻은 바가 많아 고국으로 돌아와 장차 자기의 뜻을 행하려 하였으나 쇠퇴해가는 나라의 정국은 의심과 시기가 많아 세상에 쓰이지 못하고 마침내 외직으로 태산군 태수가 되었다.”라고 하였으며, 고운집에 “태인에 연못이 있는데 선생이 본 군의 수재로 있을 적에 이 못을 파고 연꽃을 심었다.”고 한 데서 기인하고 있다.
육두품 출신이였던 최치원은 12세에 중국 당나라로 유학하여 18세에 당나라의 과거시험인 빈공과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거치다가 황소의 난 때 격문을 작성하여 능력을 인정받아 이름이 높이 드러났다. 그러나 885년 29세에 고국인 신라로 귀국하여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감사에 임명되어 의욕적으로 경륜을 펼치고자 하였으나 진골귀족중심의 신분제의 한계에 부딪히자 외직을 원해 태산군수로 나와서 8년을 근무하면서 정읍에도 많은 치적을 남겼고, 더불어 이와같이 많은 문화유산을 남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40세에 관직을 버리고 은거하면서 학문과 사상, 그리고 서체를 완성하여 대문장가, 사상가, 서예가로 불리워지고 있다.
피향정의 평면구조는 앞면 5칸, 옆면 4칸으로 된 단층 팔작지붕으로, 우물마루로 된 정자의 바닥은 지상으로부터 142㎝ 정도 떨어져 있으므로 그 아래에는 막돌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그 위에 석조로 된 28개의 짧은 두리기둥을 놓았는데 이는 우주를 28숙으로 나눴던 사상을 따른것이라고 한다. 천장은 연등천장(椽背天障)이 주류를 이루는 단청이 아름다우며, 양쪽 협간(夾間) 사이에는 귀틀을 짜 우물천장을 가설 하여 사방이 모두 트이게 되어 있어서 주변의 자연환경을 정자로 그대로 끌어 들여 오고 있다.
피향이란, 향국(香國)을 둘로 나누었다는 의미로, 본래 이 누정의 상하에는 상연지제(上蓮池堤)와 하연지제(下蓮池堤)의 두 연지가 있어 여름에는 연꽃이 만발하여 향기가 누정의 주위에 가득차므로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상연지는 일제 강점기에 메워지고, 지금은 하연지만 남아있다. 이러한 피향정 연꽃은 매우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어 정읍9경 중 제6경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누정 건물에는 많은 현판과 편액들이 걸려 있고, 비석군들이 있어서 문화재박물관을 연상하게 한다. 정자에는 1799년(정조 23) 태안현감 풍성 조항진(豊城 趙恒鎭)이 쓴 행서 ‘披香亭’현판과 낙관이 없는 ‘披香亭’, ‘湖南第一亭’현판, 그리고 이곳을 거쳐간 임억령·김종직·김윤식·윤선도·김상헌·심능숙·서상옥 등의 시인과 선비들이 피향정을 노래한 시가(詩歌)를 새긴 편액 20여 편이 걸려 있어서 문향을 짙게 풍기고 있다. 또한 피향정 서쪽에 있는 함벽루(涵碧樓) 현판은 성당 김돈희(惺堂 金敦熙, 1871~1937)가 썼으니, 이 일대에서 선비들의 품격과 문학, 그리고 서풍을 느껴보며, 이곳을 거쳐간 관찰사와 현감들의 치적을 새긴 비석들에서 애민정신을 배워보고 싶다.
&; 정읍은 이 피향정 외에도 최치원과 인연이 깊은 곳이 많다. 군수 재임시절 애민정치를 펼치고 치적을 쌓아 백성들에게 존경과 추앙을 받아 피향정 뿐만아니라 8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떠나게 되자 그를 기리기 위해 생사당인 태산사(泰山祠)가 세워졌고, 이후 최치원을 배향하기 위한 무성서원을 세웠으며, 그 인근에 최치원이 흐르는 물에 잔을 띄워 즐겼다는 유상대(流觴臺)에 많은 묵객들이 찾아 들었다고 하니, 정읍은 최치원의 또 하나의 유적지인 셈이다.
이렇게 신라시대의 대문장가, 사상가, 서예가인 최치원을 문향이 물씬 배어 있는 피향정에서 만나보고, 최치원을 배향한 무성서원, 태인동헌과 향교 등을 탐방하며 과거 선비들이 남긴 정신적인 문화에 대해 깊이 음미하면서 '인문·정신문화'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이 일대애서 세상시름을 잊는 하루 보내보시길 권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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