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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김정은과 다른 김정일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1년 03월 04일 14시42분
김정일(金正日)은 1942년 항일 유격대를 지휘한 김일성과 유격대원 김정숙 사이에서 태어났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각각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김정일은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논문은`사회주의 건설에서 군(郡)의 위치와 역할'이었다. 김정일은 예술 방면에 상당한 관심과 조예가 있었다. 1970년대 초반 `피바다', `꽃 파는 처녀 '등의 혁명가극 제작을 주도했다.

아버지 김정일과 아들 김정은 두 사람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 김정은은 살면서 좌절이란 걸 느껴본 적이 별로 없다. 반면 김정일은 매우 힘든 삶을 살았다. 통치 기간 내내 체제가 붕괴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그는 1974년 후계자로 지목된 뒤 인고의 세월을 거쳐 1980년 제6차 당 대회를 계기로 실질적 통치를 시작했다. 당시 중국에 이어 1985년에는 소련이 개혁개방을 추진했다. 안보 위협이 생겼고 경제 지원까지 끊겼다. 그리고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공산권이 대거 참가한 88올림픽은 체제경쟁에서 북한의 완전한 패배를 의미했다. 올림픽 이듬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990년 독일이 통일됐다. 러시아와 중국은 한국과 수교했다.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지고 국제질서가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 김일성이 죽은 이듬해인 1995년 대수해로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은 꿈조차 꿀 수 없었다.

동구처럼 무너지거나 독일처럼 흡수 통일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다. 김정일의 ‘선군(先軍)정치’는 불안감에서 나온 위기관리 체제다. 북한은 1980년대 후반 핵무기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핵을 가질 때까지는 미국과 한국 비위를 맞추는 게 필요했다.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이 나왔다. 당시 북한은 남한의 요구를 거의 들어줬다. 김정일 입장에서 제일 비굴한 일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수용한 것이다. 북한 정권 수립 이후 내걸어온 ‘조선은 하나다’라는 원칙을 버렸다.

한국은 미국 괴뢰정권이며 식민지이니 자신들만이 유일하게 정통성 있는 조선반도 주인이라는 기본 축이 무너졌다. 한국의 유엔 가입에 소련이나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당시 김정일의 내면은 굉장히 흔들리고 복잡했을 것이다. 내부에서도 반대가 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정말 어렵게 살다 간 비운의 지도자다.

/정복규(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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