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이만난사람] 여성 최초 완산구청장 역사 쓴 신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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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공무원들의 롤 모델이 되는 분이다. 언젠가 관리자가 되면 저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다.” “업무의 핵심을 굉장히 잘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처를 한다. 판단력과 결단력이 매우 뛰어나다.” “항상 상냥하고 친절한 분이다. 상사에게만 그런 게 아니라 부하 직원에게 특히 더 그렇다. 그래서 존경 받는 게 아닐까….”

전주시 공무원 몇 명에게 오늘의 ‘새전북이 만난 사람’ 주인공에 대해 물었더니 대체적인 평이 이랬다. 물론 ‘누가 평을 했는지는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노라’ 약속했다. 그래도 기자의 질문인지라 나름 정제해서 대답했겠지만 전반적인 평가가 합격선 그 이상이었다. 그는 후덕한 이미지에서 나오는 넉넉한 인품은 물론, 남성 공무원을 압도하는 업무 능력, 다양한 행정 경험 등을 두루 갖춘 공직 사회의 인재(人才)라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인다. 사실 그래서 지금의 자리에 까지 올랐는지도 모른다. 지난 달 인사 발령 후 정신없이 바쁠 그를 잡고 잠시 시간을 내어 달라 청했다. 전주시 역사상 최초로 여성 완산구청장이 된 신계숙(60) 청장과 2월의 어느 날 만났다. <편집자주>



전북 행정의 1번지 ‘전주시 완산구’ 지휘봉 잡은 신계숙 청장



전주 완산구(完山區)는 전북을 대표하는 지역이다. 지난달 말 기준 전주시 인구 65만8,000여 명 중 34만명 가량이 이 곳에 산다. 자치권이 없는 행정구지만 단일 행정구역으로는 전북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도 많다. 조선 태조 어진을 모신 경기전을 비롯해 풍남문, 객사 등은 물론 전국 최대 관광지 가운데 하나인 한옥마을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의 설명을 하자면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그래서인지 역대 완산구청장을 역임한 30명 중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남성 위주로 경직된 공직 사회의 분위기 탓도 있겠지만 그 만큼 중요한 자리에 ‘여성이 잘해내겠냐’는 편견도 한 몫 했을 법하다. 신계숙 제 31대 완산구청장은 이런 공직사회의 틀을 깨뜨린 최초의 여성 공무원이다.



딸딸딸…또 딸 집 넷째, 평탄한 교사보단 “역사에 기록될 일 하고 싶어”



신 청장은 1961년 지금의 남원시 금지면에서 1남6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집안은 그리 잘사는 것도, 그렇다고 끼니 걱정을 하며 살 정도도 아닌 평범한 형편이었다. 그 시절 딸 많은 집이 대부분 그랬겠지만 신 청장의 부모도 아들을 보기 위해 ‘딸딸딸, 또 딸’을 낳았다고 한다. 다섯째가 남동생이 됐다고 하는데, 욕심을 부려 하나만 더 하다가 막내 여동생까지 봤단다. 형제 많은 집에 넷째 딸 신계숙은 쾌활한 성격이었다. 오히려 남성다운 기질이 많아 학교에서 무슨 일만 있으면 제일 먼저, 가장 앞에 섰다. 학교는 금지동초, 금지중, 남원여고를 나왔다. 학창 시절 그는 검사가 되고 싶었다. 검사가 본인의 생각을 녹여낼 수 있는 직업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냥 꿈이 그랬다는 말이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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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검사가 꿈이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에게는 서울의 한 작은 회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절 여느 하급 여직원이 하는 일이 그랬겠지만 커피 타고, 청소하고, 남성 직원들이 가득 채워놓은 재떨이를 치우는 등 허드렛일이 많았다. “한 달 정도 그 회사를 다닌 것 같아요. 내가 여기서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진로를 고민하던 그에게 아버지는 교사의 길을 권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교사는 존경 받는 직업 중에 하나이고, 특히나 여성에게는 그 만한 직장도 없다는 생각에서였을 터다. 그런데 싫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차라리 공무원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왕 공무원 할 바에 역사에 기록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1981년 6월25일 공무원 신계숙의 공직 사회 진출은 그렇게 시작됐다.



여장부 신계숙, 남성이 따로 하는 일은 없었다



첫 근무지는 고향 동네 옛 남원군청 금지면사무소다. 1년 정도 근무했을 때 대학을 가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원에는 대학이 없어 근무지를 전주로 옮겼다. 당시 전주시는 공무원을 많이 확충하고 있었을 때라 큰 무리가 없었다. 지금은 노송동으로 편입된 중노2동사무소에서 전주시 공무원으로서 첫 업무를 시작했다. 그 때는 시청 아래에 구청이 없었던 시대다. 시험을 봐서 합격하면 본청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1984년부터는 본청에서 업무를 봤다. 그러면서 전주대학교 경영학과를 다녔다. 낮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나날을 보냈다. 몸은 힘들었지만 미래를 위한 자기개발에 끊임없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업무도 편한 부서보다는 남성들이 주로 하는 일을 많이 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 때는 금융실명제 업무를 담당했다. 차명계좌가 보편화돼 있던 그 시절, 실명으로 금융업무를 보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금융실명제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던 시절이었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전례가 없던 일이라 쉽지 않았는데,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아가면서 성공적으로 해냈던 것 같아요.” 압류, 추심 등으로 마찰이 심한 징수업무도 봤다. 주로 남성들이 보는 업무인데 매사에 적극적인 그의 성격과 탁월한 업무능력을 높이 평가해 배치한 듯하다. 2014년에는 과장으로 승진했다. 첫 발령지는 덕진구 송천2동. 그 당시 여성 동장에 대한 의문점을 품은 주민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하루에 동 절반을 걸어 다닐 정도로 발로 뛰는 행정을 했다고 한다. 이후에는 덕진구청 가족청소년과장, 본청 세정과장, 마을공동체과장 등을 두루 맡았고, 갈 때마다 업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2019년 7월 서기관에 올라 전주시 사회연대지원단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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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생활에 바쁜 아내와 엄마 이해해준 가족



공직생활을 하면서 밤에 대학을 다니며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낮엔 일하고 밤에 공부하면서 언제 연애까지 할 시간이 있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남편은 지인의 소개로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신 청장을 보고 갔다고 한다. 일종의 탐색을 먼저 하고 간 셈이다. 그 이후 서로 눈에 꽁깍지가 씌워진 둘은 8개월 만에 결혼한다. “그 때 나이 스물다섯인데 아무 것도 모를 때지요. 그냥 그 사람이 나를 지켜줄 것 같았어요. 이것저것 따지는 것도 없었고 그냥 사람만 보고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릴 때 결혼했다는 생각에 좀 억울한 마음도 있는데…(웃음).”

당시 남편은 박사 과정을 하고 있었는데 나중엔 교사가 됐고, 구청장 신계숙을 만드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남들처럼 내조 잘하는 아내를 원했을지도 몰라요. 늘 야근이 많고 바쁜 생활을 하느라 집안일을 잘 돌보지 못했는데, 내색 없이 묵묵히 응원해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지요. 남편은 표현에 서툰 사람이에요. 그런데 밖에 나가면 제 자랑을 그렇게 한다고 하던데 진짜인지….”

본인이 자기개발과 업무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에는 1녀1남 자녀들 역할도 있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막 들어갔을 때 승진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게 됐어요. 내 딸을 그냥 신 여사의 자녀로 키우고 싶지는 않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죠.” 모든 일엔 반대급부가 있기 마련이다. 신 청장의 자녀들에겐 엄마의 자리가 아쉬웠다. 그래서 더 강하게 자랐는지도 모를 일이다. “연년생인데 큰 딸아이가 초등학교 1~2학년 때부터 동생을 데리고 병원을 다녀오곤 했어요. 여느 엄마들처럼 한 번도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학교 앞에 서 있지도 못했고요.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미안한 일이지요. 그래서 더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오늘 날의 저도 없었겠지요. 우리 가족 항상 사랑합니다.”



“시장의 정책 녹여내는 청장의 역할 할 것”



‘지금까지 공직생활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람을 꼽으라’ 했더니 두 분의 선배를 떠올렸다. “원래 승부욕이 강한 편이라 어려운 업무도 많이 맡았었는데, 그 때마다 이런 분들이 있어 인정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 선배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란 뜻을, 다른 분은 ‘때론 추진력을 가지고 돌직구를 던질 때도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줬다. 신 청장은 지금까지 그 조언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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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최초의 완산구청장이 되자 기뻐하고 축하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어깨도 무겁다. 하지만 여성이라서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완산구는 인구도 많을뿐더러 중앙, 풍남, 노송동 등 천년의 고을, 기품 있는 주민들이 많은 사는 곳입니다. 매일 같이 3~4분씩 민원으로 오시는데 그분들과 대화하며 해법을 찾으며 보람을 찾고 있습니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면서 시장의 정책적 부분을 녹여낼 수 있는 청장이 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코로나19로 어느 때보다 어려운 이 시기, 열린 구청에서 얼어붙은 시민의 마음을 녹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권동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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