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포 김구(지은이 김병기 전북대교수, 발간 도서출판 다운샘)'는 고려말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 지포 김구를 연구, 발표한 책자다. 부안출신 제주 판관김구(金坵, 1211-1278)는 고려 고종 때 문신이다. 이름 속 구(坵)자는 흙토(土) 변에 언덕 구(丘)로 밭 위에 언덕, 밭담과 이어진다. 밭담 쌓기에 관해 문헌으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1234년 제주판관 김구가 농지와 관련한 재산권 다툼을 방지하기 위해 경계용 밭담을 쌓도록 지시했다고 적혀 있다. 농사를 짓기 위해 개간하는 과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돌들을 힘들여 멀리 운반하지 않고 자연스레 밭 주변에 쌓았을 거란 생각이다.
책자는 김구의 생애, 성리학 도입의 선도적 역할, 지포선생문집의 편간, 김구의 외교 활동, 두 아들 김여우와 김승인 등 6장으로 엮어졌다. 그는 24세때인 1234년에 제주판관으로 임명돼 제주에서 보내며 선정을 베푼다. 밭담 쌓기의 기원은 김구에 의해서이다. 아래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이원진(1594~?)의 '탐라지'의 제주의 밭담에 대한 기록이다. ‘취석축원(聚石築垣: 돌을 모아 담을 쌓았다). '(제주)밭이 예전에는 경계의 둑이 없어 강하고 사나운 집에서 날마다 차츰차츰 먹어들어 가므로 백성들이 괴롭게 여겼다. 김구가 판관이 돼 주민의 고통을 물어서 돌을 모아 담을 쌓아 경계를 만드니 주민이 편하게 여겼다’그는 후대에 몽고의 간섭과 무신정권 속에서 빼어난 문장력과 강직한 성품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정책을 편 정치가로 평가받고 있다. 탁월한 식견과 천재적인 시재로 당대의 문호였던 이규보가 경탄한 실력의 문장가였다. 하지만 현존하는 작품은 '지포집'에 수록된 시편 12제 14수에 불과하며 이 때문에 당시 유학자로서의 입지와 정치적 성향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문헌이 많지 않은 실정이다. 김구는 큰 학자이자 지대한 외교 업적을 남긴 정치가로 원나라에 대한 외교 문서를 담당했고 이곳을 다녀와 이때 지은 기행문으로 ‘북정록(北征錄)’이 있다. 최항의 명으로 지은 ‘원각경(圓覺經)’의 발문 시가 최항의 뜻과 맞지 않아 좌천되기도 했다. /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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