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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호모 룩스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1년 01월 13일 13시46분
/박정혜(심상 시치료 센터장·전주대 겸임교수)



죽음. 이 금기의 말을 함부로 발설하는 것은 위험하다. 무섭고 두렵기 때문이다. 팬데믹 현상이 확연한 이때, 더욱 그러하다. 이 금단의 영역을 깨고 나온 영화가 있다. ‘내가 죽던 날’, 작년 11월에 개봉한 이 영화는 태풍 라파가 휘몰아치던 날, 자살한 여고생 세진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세진은 중요 증인으로 법적 보호를 받고 있다. 부당하게 돈을 벌다가 마침내 자살한 아빠, 이혼하고 외국으로 간 뒤 소식이 두절된 친모, 마약사범으로 옥중에 있는 오빠, 친하게 지냈지만 아무런 보호를 해주지 못하는 새엄마. 유일하게 마음을 기댔지만, 갑자기 소식을 끊어버린 담당 경찰. 모든 것이 암담하기 이를 데 없다. 최종 보고서를 쓰기 위해 조사하던 경찰 현수는 자살로 귀결짓고 돌아서면 될 처지다. 현수는 이혼 조정 중이다. 변호사인 남편한테는 십 년째 만나오던 임신한 여자가 있다. 왜 몰랐을까. 왜 몰랐는지에 대해 계속 반문한다. 문득, CCTV에 녹화된 세진의 표정이 자신과 닮았다는 것을 본다. 그것은 속고 속이는 삶에 대한 환멸이다. 원한으로 화가 치밀어 오를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울분은 안에서 터져 자폭할 지경이다. 머리를 아무리 써도 답이 없다. 영화의 반전은 오로지 ‘순천댁’으로 인해서 일어난다. 순천댁은 과거, 농약으로 자살 기도를 해서 목소리를 잃었다. 어린 나이에 전신 마비가 된 조카를 건사하고 있다. “아빠와 오빠가 나쁜 짓을 많이 해서 내가 벌 받았나 봐요. 아무것도 안 남았어요”라고 말하는 세진한테 서툰 글자로 이렇게 쓴다. “니가 남엇다” 그리고 세진의 탈출을 돕는다.

현수는 “아무도 없어. 내가 여러 명 만나봤거든. 그 애 그렇게 죽을 애가 아니다라고 말해줄 그 한 명이 없어”라며 허탈하게 말한다. 그러다가 보고서가 만료된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다. 세진의 첫 유서 뒷장에 남긴 순천댁의 글자. ‘밥두 묵고 약도 잘 묵으라’

우리는 ‘카인의 후예’일지도 모른다. ‘어둠의 자식’이고 심지어 ‘나쁜 피’일지도 모른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서문에는 누가복음 10장 19절 말씀이 적혀 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발로 뱀을 밟을 권능을 주었노니 그 무엇도 너희를 해할 수 없으리라” 그리하여 오로지 신의 은총에 의해 우리는 빛, 호모 룩스(Homo Lux)다. 태어난 것도, 죽는 것도, 그 사이에 살아가는 지금 현재도 모두 빛이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만큼 신의 권능이 나타난다. 영화 속, 세진은 가는 곳마다 야광별을 붙여 놓는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별은 더욱더 빛난다.

/박정혜(심상시치료센터장, 전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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