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군 이방우는 임금의 맏아들인데 성질이 술을 좋아해 날마다 많이 마시는 것으로써 일을 삼더니, 소주를 마시고 병이 나서 졸(卒)했다”

옛 이야기에서 전북을 만나다:이방우와 소주 조선왕조실록에 소주를 마시다가 사망한 첫 번째 인물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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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뜻이 없다 보니 굳이 개경에 남아 있을 필요를 못 느낀 진안군(鎭安君, 鎭安대군) 이방우(李芳雨)는 아버지에게 청하여 땅과 집을 하사받고 고향 동북면의 함흥지역으로 옮겨갔다. 음력 1393년 12월 13일에 기록된 실록의 내용을 보면 “진안군 이방우는 임금의 맏아들인데 성질이 술을 좋아하여 날마다 많이 마시는 것으로써 일을 삼더니, 소주(燒酒)를 마시고 병이 나서 졸(卒)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아버지인 태조 이성계는 3일 동안 조회를 열지 않을 정도로 아들의 죽음을 슬퍼했다. 이후에 이방우의 장남인 이복근에게 진안군의 지위를 이어받게 했지만, 당시의 힘을 상징했던 사병은 이복근이 아닌 태조의 형 이원계의 아들인 이조에게 이어받게 해 실질적인 장손의 대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방우는 시대의 흐름에서 소외된 자신의 처지에 위안을 얻고자 맛을 들인 소주에 취해 결국 40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실록에 소주를 마시다가 사망한 첫 번째 인물로 실리며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아버지인 태조 이성계나 동생인 태종 이방원이나 맏아들(혹은 큰 형)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이방우의 가족들을 돌봤다. 1395년 태조는 진안대군 이방우의 아들인 이복근을 ‘진안군’으로 습봉(襲封·세습해서 봉함)했다. 동생인 태종은 1412년 진안대군의 부인(태종의 형수)인 지씨에게 쌀·콩 15석과 술, 과자 등을 하사했다. 2년 뒤에는 이방우의 사위인 이숙묘에게 쌀·콩 20석과 종이 150권을 하사했다.

태조 이성계의 맏아들인 이방우가 ‘술병’으로 죽었다는 <실록>의 기사다. 맏아들의 부음소식을 들은 태조는 3일 간이나 조회를 정지하라는 영을 내리고 근신했다.

태조는 이방우에게는 ‘경효(敬孝)’라는 시호를 내렸다. 역사를 쓰면서 ‘만약’이라는 가정법을 써야 아무 쓸모 없다.

<태조실록>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1392년(태조 1) 8월 7일 여러 왕자를 군으로 봉할 때 진안군(鎭安君)에 봉해지고, 1393년(태조 2) 10월 17일 진안군 방우에게 명하여 4대 선조를 제향케 하고, 신주를 효사관(孝思觀)에 임시로 안치케 했다’

1395년(태조 4) 12월 13일 진안군 방우가 별세하니 소주를 많이 마셔 병이 났기 때문이다. 조정에서 3일 동안 조회를 정지하고 `경효(敬孝)'란 시호를 내렸다. 14일에는 백관들이 진안군을 조위(弔慰)했고, 15일에는 진안군을 장사하는데 백관들이 문밖에서 전송했다'

이로 보면 진안대군은 1395년 12월 13일에 별세하고 15일에 장례를 지냈다. 처음에는 함흥 북원(北原) 평사(平社) 마내곡(馬內谷)에 장례지냈다가 1408년에 어머니 신의고황후의 능침인 제릉 곁에 모신다는 의미에서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황강리 몽상동으로 이장했다.

지금이야 대한민국 국민 술 하면 소주를 제일 먼저 떠올리지만 조선시대에는 약으로 쓰이는것 말고도 마시지 못하게 했다. 조선시대 소주 금지령은 자주 내려져 무려 아흔여섯번이나 내려졌다.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근년에는 곡식이 풍년이 들지 아니 하여 민생이 염려되오니 서울과 지방에 술을 쓰는 것을 금하여 낭비를 덜게 하소서"

조선왕조실록 1436년(세종 18) 4월 17일 기록을 보면 임금이 말하기를 "마땅히 금주를 해야 하나 취하도록 마시지 않는 자와 약으로 먹는 자는 함부로 마시는 사람들과 함께 묶어 죄를 묻지 말고 자세히 정상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따져 죄를 묻되, 그 정상이 참작되는 사람들은 모두 풀어주도록 하라"

조선 성종 때 편찬한 법전 '경국대전'에 따르면 '소주는 약으로 쓰는 것 말고는 마시지 못한다'라고 돼 있다. 이는 백성들은 함부로 소주를 마셔서는 안되며 소주는 양반의 분수와 신분을 나타내는 고급스런 술이라는 것이다. 이 시대 소주는 대표적인 형식주의적 기호품이였던 것.

여기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는데 조선시대 양반사대부들은 자연 속에서 놀이를 하면서 풍류를 즐겼고 알코올 도수가 높았던 소주는 양반들이 많이 먹어 취하면 말과 행동이 흐트러져 양반의 체통을 그르칠 것을 예방한 조치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주를 많이 마셔 사망하는 일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소주를 너무 많이 마셔 사망한 기록상의 첫번째 사람은 바로 태조 이성계의 큰아들인 진안대군 이방우다. '태조실록'에는 '진안군이 결국 소주를 마시고 병이 나서 죽었다'고 기록돼 있다.

소주를 약으로 쓰인 예도 있다. 문종이 세상을 떠나 장례식을 치르면서 13세의 어린 단종은 몸과 마음이 몹시 지쳐있었다. 그러자 신하들은 단종에게 소주를 권했다. 전하, 소주를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단종은 소주를 마시고 곧 기운을 되찾았다고 한다.

이방우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진안대군파의 시조이다. 어머니는 신의왕후 한씨이다. 부인은 찬성사 지윤의 딸이다. 1388년(창왕 즉위) 밀직부사로 밀직사 강회백과 명나라에 들어가 창왕의 친조를 청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귀국했다. 1392년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즉위하자 진안대군에 봉해졌다.

진안에 주필대와 은수사 등 이성계와 얽힌 이야기가 곳곳에 어려 있다. 이성계가 장남 이방우를 진안군(鎭安君)에 봉했다는 것도 상상력을 자극한다. ‘진안군민의 날’도 태종 이방원이 방문했던 것으로부터 유래된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토대로 스토리텔링을 한다면 전주를 찾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진안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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