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박한 심정으로 수백명의 목숨과 재산을 보호하는 동시에 가뭄극복에도 일조했다”
올해 대한민국이 코로나19와 함께 사상 첫 50일 이상 장마와 집중호우로 인해 긴장했다.
기록적인 수해재난 때문에 정부는 댐 안정성 강화 및 항구적 인프라 구축, 수해 대응 예산을 대폭 늘리겠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농촌인 고창군 해리면 소재지를 25년전에 가뭄과 수해로부터 구해낸 황기환(87. 사진) 장로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96년, 해리면소재지 상부에 있는 유일한 ‘고십 저수지’가 적은 물량과 누수로 인해 가뭄에 대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작은 비에도 주민대피 소동 등 50여년간 주민의 마음을 조여 왔다.
황 장로는 “가뭄 때문에 큰 싸움이 벌어지고 비만 오면 비상 싸이렌 소리가 요란했다”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46년간 이장과 8년간 노인 회장을 지낸 황 장로는 더 큰 물난리를 예방하기 위해 팔을 걷었다. 그는 당시 도지사의 고창순방에 맞춰 간절하게 제방공사를 건의한 끝에 군수와 지역민들의 높은 관심으로 마침내 고십 저수지가 완성됐다.
이곳은 해리면에서 선운산 자락에 ‘고십지구농촌용수보강 개발사업’의 표지석과 함께 1998년 착공 및 고창군 건설과 임채봉, 안종환 감독의 이름이 새겨지는 등 그의 꿈이 이뤄진 것이다.
이를 위해 그의 물심양면 노력과 도로개설 토지에 대해 수천만원의 개인 희생은 가세가 기우릴 정도로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한 것.
당시 장선복 여자반장은 “저수지 공사 땜에 서울을 수십번 왕래하며 사비도 3천만원 이상 들어가는 등 그의 열정과 희생은 정치인보다 높았다”라고 회고했다.
따라서 지난주 고창군 기관과 공무원들은 수해복구에 구슬땀을 흘리며 항구적 침수지였던 해리면 소재지의 대응능력에 대한 황 장로의 아름다운 선행이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해리면은 낮은 평야가 발달해 궁산저수지의 농업용수원과 삼양염전까지 관리했던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이며 송양사와 배맨바위라 불리는 계선암, 동호해수욕장 등이 있다.
황 장로의 삶 또한 기구하다. 그는 4남매 막내로 태어나 고향을 지키며 새어머니에게 끝까지 효심을 다하면서 3남매를 키워 손녀가 5명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40세에 폐병을 앓을 즈음에 지인의 권유로 기독교로 개종, 원불교에 20kg쌀 20포 기증을 비롯해 독거노인들을 임종까지 자신의 집에서 돌보는 등 예수 사랑을 몸소 실천해 왔다.
그는 “일하기 싫으면 먹지 말라는 말씀처럼 일하고 봉사하는 기쁨으로 살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가 신봉한 무장제일교회는 올해 환갑을 맞은 전통과 무장여자노인당, 무장어린이집 등을 운영하며 ‘희년을 준비하는 교회’ 표어로 지역사회에 등불이 되고 있다.
고십 저수지의 유래에 대해서도 일본인들이 식수로 쓰던 곳으로써 고인이 된 김용기 선배가 물관리하다가 자신에게 넘어오자 관심과 문제점들을 발견, 1964년부터 상습피해를 우려한 끝에 이처럼 도지사 면담과 당시에 이호종 군수, 강희준 도청 용수계장 등이 힘을 실어 준 것이다.
이 밖에도 황 장로는 경지정리를 통해 농로확보와 평지마을 우회도로 개설, 고창공설운동장 기념식수 기증 등으로 그의 발자취가 기억되고 있다.
희생과 봉사로써 주민의 생명을 지킨 황 장로는 고창의 기상을 높이고 있다./고창=안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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