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학도시 고창군은 올해도 군민아카데미를 군립도서관에 개설해 지난 10일부터 9월까지 총14회에 거쳐 의병활동과 고창출신 인물에 대해 강의가 열리고 있다.
'역사를 통해 살펴본 의향 고창의 인물과 정신'주제로 백원철 전 공주대교수를 비롯해 김봉곤 전 순천대교수, 원광대 정성미교수, 고창북고 안후상교사, 이병열 고창문화연구회 등이 이끌고 있다.
지난 24일 열린 백원철교수의 '왕조실록을 지킨 도암 오희길 참봉'에서 명확한 왕조실록 보존과 역사적 편향도 발견한 것.
이는 정읍 칠보면에 태산선비문화사료관과 정읍시립박물관의 전시실에 왕조실록을 지킨이로 안의와 손홍록 두 사람만 소개하고 있어서 당시 두 사람을 지휘한 실질적 책임자인 도암 오희길 참봉이 빠진 것이다.역사적 고증을 토대로 자료집과 강의에 나선 백교수는 "임진왜란때의 유일하게 보전된 왕조실록을 지킨 도암의 공적은 말할 나위가 없이 크다"며 "고창향교에도 '도암 오선생 공덕비'가 잔잔히 지키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도암 오희길 선비는 1556년 고창현의 북쪽 필봉 아래의 사제에서 태어나 16세에 아내를 맞이하고 과거공부 보다는 경학에 집중해 율곡과 우계 양선생의 학풍을 추종했다.
그는 지반이 습하고 협소한 고창향교를 1579년 현재 향교인 자신의 집터를 기증한데 이어 누이를 따라 순창군으로 이거한 의향인이다.
이어 도암이 전주 경기전 참봉에 제수되어 1년에 되어 왜적이 침입했으나 태조어진과 제기, 실록 260권, 고려사 등 총 1,300여권이 60궤에 담겨진 보물을 지키지 못한 채 임기가 끝나 귀향한 지경였다.
하지만 그는 국난의 상황에서 실직인 상태에서도 어진과 실록의 안전보존책을 강구한 끝에 1592년 전주에서 내장산 용굴암, 은적암, 비래암, 아산과 해주, 강화도, 안주, 영변부 묘향산 보현사 등으로 옮겼다.
그 결과 실록은 춘추관과 충주와 성주사고에 보관했던 건은 전란 중에 모두 소실되고 오직 전주사고본만 묘향산에서 병화를 피할 수 있던 것이다.
이후 도암은 거제도에 유배돼 70세까지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아 도동연원록 3권을 저술하기도 했다.
이처럼 의향 고창출신 도암 오희길 참봉은 희생과 봉사정신,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의 숨은 인물로써 재조명되고 오늘날 고창학 군민 아카데미에서 애국애향심을 지피고 있다./고창=안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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