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70여년 만에 편안히 잠든다

전주시, 지난해 8월부터 다음달 8일까지 황방산과 소리개재 일원서 유해발굴 전주 황방산서 두개골 치아 등 유해 237건, 유품 129건 발견, 소리개재서는 미발견 1차 감식 거쳐 세종시 추모의 집에 봉안, 유해발굴 과정 등을 담은 보고서 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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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 인민군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남한과 경계인 3.8선을 넘었다. 소련으로부터 원조를 받은 북한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였던 국군은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내줬다. 무서운 기세로 남하하는 인민군에 밀리던 국군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호남의 관문인 전주마저 적에게 빼앗길 위기에 놓였다.

당시 남한의 군?경은 전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좌익 색출에 나섰고, 전주형무소에 1,400여 명을 수감 조치했다. 이곳에는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 등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감자를 비롯해 모두 1,400여 명이 갖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군경은 남하하는 인민군에 의해 퇴각하면서 전주형무소의 수감자를 포함해 1,600여 명을 처형했다.

이번엔 인민군이 전주를 점령하면서 우익세력 검거에 나섰다. 1,000여 명이 얼마 전 좌익세력처럼 전주형무소에 투옥됐다. 인민군은 연합군의 가세로 전세가 바뀐 9월27일 전주에서 퇴각하면서 우익 인사로 지목된 440명을 총살했다. 군경이 퇴각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때도 억울한 누명을 쓴 민간인이 포함돼 있었다.

우리 정부와 미군의 자료에 따르면 당시 전주에서 ‘좌익’과 ‘반동분자’라는 이유로 약 3개월 사이 군?경과 인민군에 의해 2,000여 명이 학살됐다. 희생된 이들은 전주 황방산 기슭과 전주농고 언덕, 형무소 뒤 공동묘지, 완주 소양 입구인 소리개재 등 4곳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살해된 사람 중에는 이념과 무관한 양민도 많았지만 이들의 유해는 70년 간 아무도 찾지 않았다.

전주시는 지난해 8월 한국전쟁 당시 희생당한 민간인의 유해발굴에 나섰고, 다음달 8일 1차 마감을 앞두고 있다. 현재까지 황방산 일대에서 두개골과 치아, 다리뼈, 팔뼈 일부 등 유해 237점이 발굴됐다. 치아를 제외한 뼈대 분석을 통해 분석한 결과 최소 개체는 34개체로 추산됐다. 또 희생자가 입고 있던 의복의 단추와 신발굽, 벨트 등의 유품 129점이 나왔고, M1소총과 권총의 탄피, 총기의 탄두 등도 출토됐다.

시는 오는 29일 최종보고회를 거친 뒤 다음달 중으로 발굴된 유해에 대해 세종시 추모의 집에 안치할 계획이다. 이후 2차 유해발굴 용역을 통해 시굴작업이 진행되지 않은 황방산 일부 지역과 유해·유품을 발견하지 못한 소리개재에 대해 재차 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전주시 관계자는 “희생된 분들의 아픔과 한을 치유할 수 있도록 유해발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공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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