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를 청, 봄 춘. 청춘! 그것은 인생의 봄이다. 막 눈을 틔운 유록도, 한창 우거진 초록도 아닌 가장 아름다운 푸른빛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현재의 미숙함이 뒤섞인 무지개 꽃이다. 인생의 봄은 청년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봄은 얼음을 녹이고 꽃을 피우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야 한다. 화창한 날씨여야 한다. 땅 위와 땅 밑, 사람과 자연 모두가 분주하게 살아 움직여야 봄맛이 난다. 개나리가 흐드러지고 개구리 뛰는 소리가 온 들판을 흔들어야 비로소 봄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인생의 봄을 누려야 할 이 땅의 청년들은 춘래불사춘이다. 이 땅 위에서 봄을 앗아가 버린 코로나19 때문만도 아니다. 따뜻하고, 화창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할 인생의 봄을 현실의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더구나 코로나19는 그나마 남은 힘까지 소진시키며 희망을 빨아들이는 절망의 늪이 되고 있다. 이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나름대로 별의별 노력을 다하는 그들이 안쓰럽다. 취업, 연애, 결혼, 출산, 주택까지 포기하며 몸피를 줄이고 있다. 행장을 가볍게 했어도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버거워 가뿐하게 일어설 수가 없다. 더 많은 것들을 포기하도록 압박하는 현실은 언제 벗겨질지 모를 지독한 안개에 뒤덮여 앞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을 사는 청년들에게 인생의 봄은 정녕 봄이 아니다.
청년은 현존하는 미래라고 했다. 나라의 꿈인 청춘이 앓고 있다. 신음마저 잦아들어 절인 배춧잎 같다. 청년들이 맥없이 주저앉아버린 이 나라의 미래가 암울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말장난에 불과한 위로나 빨간약 같은 정책으로 치유되지 않을 구조적 모순 앞에서 한숨만 나올 뿐이다. 기적 같은 신의 한 수를 소망하며 그저 기도할 따름이다.
“하늘이시여! 하필 이 시대에, 이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곤경에 빠져 허우적대는 청년들에게 새 힘을 주소서. 탈출구를 밝혀주소서. 두려움의 에너지를 용기로 바꿔 주옵소서.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며 긍정의 삶을 살게 하소서. 인생을 허투루 여기지 않게 하옵소서.”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젊음의 끓는 피, 정열과 이상이 청춘의 가치로 예찬 받았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융복합의 다원 사회를 살아내는 삶의 지혜는 지식도 용기도 아닌 사랑과 긍정의 마음이 아닐까. 지인의 아들이 현실에 좌절하고 세상을 미워하다가 우울증에 빠져 하늘의 별이 되어 버렸다. 그를 허공에 날리고 오는 내내 “사랑과 긍정” 이 한마디가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사랑과 긍정은 닭과 달걀의 관계와 같다. 사랑의 마음이 있으면 긍정의 눈으로 보게 되고 긍정의 눈으로 보다 보면 사랑의 마음이 싹트기 마련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주어진 환경을 긍정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어찌 현실을 즐길 수 있으랴.
청년들이여!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견디는 것이다. 외로움은 외로움으로, 아픔은 아픔으로 지우는 법이다. 사랑과 미움, 긍정과 부정의 에너지 총량은 같다.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긍정의 용기로 이 고난을 이겨내길 응원한다. 펄떡이는 심장으로, 건강한 생명력으로 새로운 정열과 이상을 향한 새 힘과 더 큰 용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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