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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섬길-신안 올레길

김재희

기사 작성:  이종근
- 2020년 05월 21일 14시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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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유난이 밝은 봄날, 섬 길을 걷는다. 물이 빠져나간 갯벌 위로 쏟아지는 햇볕과 짭조름한 바람이 온몸을 감싸고 든다. 느긋한 걸음으로 좁다란 노둣길을 걷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파란 하늘에 뭉텅뭉텅 엉클어진 흰 구름이 시리도록 상큼하다.

그저 민둥산 같은 언덕배기 밑으로 띄엄띄엄 서 있는 집 몇 채 외엔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다. 공터에 얼키설키 엉켜있는 그물이 대신 사람 훈짐을 느끼게 한다. 몇 사람만을 내려놓고 떠나가는 뱃고동 소리도 아스라이 사라져 가고 낯선 객을 향한 개 짖는 소리도 그저 조용한 울림일 뿐이다.

그 조용한 울림이 여운으로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에 4개의 섬이 노둣길로 연결되어 있다. 그 노둣길을 건너면서 일주하다 보면 12개의 쉼터(작은 교회)를 만나게 된다. 종교를 떠나서 길 가다 잠시 들러 명상에 젖어보는 공간인데 건물마다 나름대로 의미를 갖춘 작품성이 돋보이는 집이다. 한두 사람이 들어가면 딱 맞는 아담한 공간들은 다 다른 특징이 있다.

사람 얼굴만 한 창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이 새롭다. 섬으로 들어오면서 보았던 넓은 바다는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작은 창 안에서 압축된 그림으로 보인다. 천정에 그려진 달과 별의 모양으로 하늘을 상징하고 물고기의 비닐로 넓고 깊은 바다를 상징했다. 그 작은 공간에 온 우주가 다 들어 있다. 내 한 몸 겨우 눕힐만한 공간에서 참으로 넓은 세상을 느낀다.

창문으로 비치는 무늬가 참 독특하다. 빛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창에 비치는 그림이 환상적이다. 햇볕의 명암 효과를 이용한 그 집은 날씨가 좋은 날에 보아야 효과가 있다. 창문의 올록볼록한 부분에서 햇살이 굴절하고 그 부분으로 통과하는 빛이 색다른 무늬를 만들어 낸다. 집을 세운 기둥의 색이 안에서 보이는 그림의 색을 넣어주는 역할을 한다. 햇볕이 어느 각도에서 얼마만큼 들어오는 정도에 따라 그려지는 그림이 달랐다. 사람이 어느 방향에 서 있는가에 따라서도 달라졌다. 내게 주어진 삶의 질은 어떤 영향에서 얻은 결과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집이다.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진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시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지금껏 보아왔던 것 중에서 제일 경건한 마음으로 보게 된 십자가이다. 어둑한 공간의 햇살 줄기 속에서 떠돌아다니는 뿌연 부유물이 살아 있는 생명체로 보인다. 세상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은 신의 묘수 같다.

여닫는 문이 없는, 이중으로 보이는 문틀 건너에 놓여있는 벤치가 평화롭다. 안과 밖이 열려 있는 곳에는 경계가 없다. 유有와 무無의 구분이 없을 것이고 높고 낮음이 표시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모든 시름이 사라질 것 같다. 무거운 것들은 잠시 벗어 놓고 빈 마음이 되어 보는 것도 좋으리라. 그곳에선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집을 건너가는 길이 이미 촉촉하게 젖어 있다. 스르륵 밀려드는 바닷물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가까운 거리지만 그 거리를 건너갔다 올 동안을 참아주지 못하는 것이 지구의 섭리다. 우리 인간은 그러한 자연의 섭리를 마음대로 조정하려 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앙탈을 부리며 산다. 그러다 언젠가는 그 후유증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후다닥 정점을 찍고 돌아 나오는 순간 기우는 햇살이 볼에 닿는다. 해도, 나도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이별식을 나누었다. 멀리서 마지막 배임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





프로필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행촌수필문학상, 수필과비평문학상, 전북수필문학상 수상

저서 : 《그 장승이 갖고 싶다》, 《꽃가지를 아우르며》,《하늘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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