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 영 동(아제르바이잔 IT 정책 자문관)
작년에 이곳 아제르바이잔으로 파견되어 올 때만해도 지인들로부터 적지 않은 부러움을 샀다. 이름조차 생소했던 아제르바이잔은 그동안 낯선 곳이었지만 최근 들어 새로운 여행 선망지로 떠오르고 있는 ‘코카서스 3국’의 하나다. ‘불의 나라’라는 애칭과 함께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 지역에서 깊은 역사와 이색적인 풍광을 자랑하고 있는지라 가보고 싶은 그들의 부러움은 여느 것과는 결이 다르다.
그들이 부러워하는 만큼 솔직히 내 기분도 우쭐했다. 하지만 그 우쭐한 기분은 지인들의 부러움으로 인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 곳 사람들이나 웬만한 유럽 사람들은 한국인과 중국인과 일본인을 거의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나 용케도 나를 ‘Korean’으로 단박에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의 아이돌 그룹인 BTS 팬들이다. 이곳 시내 카페를 갈 때마다 가끔 BTS 광팬을 만난다. 직접 BTS를 본 적은 없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BTS를 본거나 진배 없으니 BTS 대신 사진을찍고 ‘싸인’을 해달랜다. 비록 BTS 본인은 아니지만 BTS 아버지라도 만난 양 그들은 흥분을 감추지 않으며 내 우쭐함을 한껏 높여 놓는다.
올 초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던 ‘기생충’ 영화 관련 뉴스는 중동지역을 대표하는 이슬람 방송인 ‘알자지라’나 유럽의 대표 방송인 BBC의 메인 뉴스를 장식하였다. ‘Korea’와 ‘Bong’ 감독의 영문 자막이 나올 때마다 ‘ Korean’ 으로서 나의 우쭐함은 덤으로 올라갔다. 한동안 영문 자막이 있는 기생충(parasite)영화 파일을 구해 달라는 성화에 시달려야 했다. 영화 제작에 눈곱만큼도 기여한 바 없는 나였지만 ‘Bong’의 덕분에 편승한 나의 우쭐함으로 전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한류! 말로만 듣던 한류를 믿기지 않을 만큼 실감했다.
‘IT 정책 자문관’으로 파견 된 이 곳 부처에서 처음 상견례를 했을 때 한 간부가 했던 말이 나를 찡하게 했다. “IT 강국에서 오신 분이 우리와 같이 계신 존재 만으로도 파견 임무의 반은 달성하신 셈입니다” ‘IT 강국 Korea’를 에둘러 표현한 이 한마디는 나의 우쭐함을 넘어 감격으로 목이 메이게 했다.
한국에서 선물로 가져간 마스크 팩과 기초 화장품은 여직원들을 ‘코리아 넘버 원’ 팬으로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한국인들은 왜 그리 젊어 뵈냐며 부러워했던 그들이기에 ‘Made in Korea’ 화장품을 아껴 바르며 그들도 한국인처럼 더 젊어 보이기를 꿈꿀 것이다.
‘BTS’! ‘Parasite’! ‘’IT 강국’! ‘ Made in Korea 화장품’! . 굳이 내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이들이 먼저 다가와 열광해 주는 한류의 대표주자들이다. 나는 단지 ‘Korean’ 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쭐함의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그 우쭐함의 시효는 올 1월 초까지 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소위 중국의 ‘우한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한 무렵까지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건 ‘중국’ 일이니 ‘Korea’와는 구별되어지기를 바랐다. 길을 가다가 가끔 철없는 애들이 ‘바이러스’하면서 놀려대면 그들이 묻지도 않았는데도 나는 바이러스와 상관없는 ‘ Korean’ 이라고 적극 해명을 하곤 했다.
오죽했으면 한, 중, 일 사람을 제대로 구별 못하는 서양인들을 위해 백팩 가방에 태극기를 달고 다니라는 현지인의 조언이 있었을까! 그 기발한 발상은 얼마 못 가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한국이 중국 밖 국가에서 바이러스 감염이 가장 많은 나라로 등극했다. 이젠 대놓고 ‘바이러스’라고 놀려대도 딱히 할 변명이 없게 되었다. 하루 감염자 수가 900여명을 넘으며 한국이 바이러스 뉴스의 중심에 놓인 날이었다. 평소 영어라곤 ‘ 마이 프랜드’ 밖에 모르던 경비 아저씨가 출근하는 나를 부르더니 ‘Korea big problem’ 이라고 걱정스레 말을 건넷다. 이 아저씨는 그 동안 BTS나 IT 강국, 그리고 기생충이나 화장품이 한국과 관련이 있다는 데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남한과 북한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던 터였다. 이제 이 경비 아저씨는 Korea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바이러스 덕분(?)이었다.
내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차라리 계단으로 올라가려는 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신호 대기를 하고 있으면 노골적으로 자리를 피하는 아이들이 눈에 거슬렸다. 어떤 이는 우리와 함께 가는 현지인에게 “ Korean하고 함께 있으면 위험하지 않느냐?” 고 묻는 씁쓸한 현실도 감내해야 했다. 우리가 택시를 타면 기사는 마스크부터 쓰고 본다. 마트에서 계산을 하려 줄을 서면 내 주변은 자연스레 일정 간격의 거리두기가 형성된다. 카페에 가도 젊은이들이 더 이상 사진을 찍자거나 싸인을 해달라고 반기지 않음은 이상할 게 못 된다. 기생충 영문 자막 파일을 구해달라고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도 오히려 내가 부담스럽다. ‘IT 강국에서 오신 자문관님’ 이지만 사무실보다 재택 근무를 하시는 게 좋다는 권고를 굳이 마다할 수가 없다.
BTS, 기생충, 봉준호, IT 강국, Made in Korea화장품! 한없이 자랑스럽고 나를 우쭐하게 했던 이 아름다운 이름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COVID-19 바이러스로 인한 치명율이 이들에게는 심각한 지경이다. ‘Korea’를 상징하며 국가 위상의 버팀목이 되어주던 이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중증으로 앓고 있다. 오래 누워있을수록 회복하기도 여의치 않다.
하지만 빨리 회복시켜 옛날의 위상으로 돌려 놓아야 한다. 쉽지 않다. 프랑스의 한 변호사의 기고문에서 엿볼수 있듯이 Korea가 잘 되는 꼴을 눈뜨고 못 봐주는 서양인들의 알량한 자존심도 걸림돌의 하나다. 유구한 자유주의 역사를 자랑하는 그들을 제치고 동방의 작은 나라가 갑자기 앞서 가는 꼴을 쉽게 봐 줄 아량이 그들에겐 없다. 11위 경제대국, 수출 규모 세계 6위의 대국인 한국의 위상을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는 그들의 인식이 딱하긴 하지만 그 또한 현실이니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임은 틀림없다.
이들을 탓하고 실망만 할게 아니다. 희망의 근거는 있다. '엘 파이스'가 발간하는 월간지 '아이콘(ICON)' 호는 영화 '기생충'을 예로 언급하며 "소프트파워라 불리는 얄미울 정도의 매력으로 무장한 한국이라는 강적 앞에 심지어 자유주의의 엘리트로 여겨지는 할리우드도 항복했다"며, 한국을 "활력과 매력, 다양성으로 점철된 문화산업을 수출하는 나라”라고 제대로 평가했다.
우리도 이 참에 통렬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바이러스 한 방에 날라가 버리는 가녀린 한류보다 어떤 바이러스에도 끄덕 없는 내성이 강한 한류를 만들어 세상에 퍼트려야 한다. 사람을 헤치는 ‘Pandemic’ 이 아니라 인류를 행복하게 하는 ‘Happy Pandemic’ 인 한류 바이러스를 만들어야 한다. 유행(流行)은 흘러서 가버리면 그 뿐이다. 화산처럼 폭발하고 사그라지는 유행이 아니라 세계인의 인식 속에 뿌리내려 문화가 되는 한류, 지속 가능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한류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 능력과 가능성을 증명해 냈기에 그런 꿈의 실현은 더욱 고무적이다.
잠시 격리 되었던 BTS, IT강국, 기생충, Made in Korea 같은 한류들이 툴툴털고 일어 나 더욱 더 건강하게 나타날 것이다. 잠시 나를 피했던 이들이 나에게 손을 내밀며 다가 올 날이 머지 않았다. 밝고 발랄한 표정의 이 곳 젊은이들도 분명 외치고 있다. “ BTS를 돌려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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