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논단]'일주명창, 오늘의 정치인들은 무엇을 밝히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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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명창(一炷明窓) 심지 하나가 창을 밝힌다.”고(故) 장준하 선생이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다는 이 네 글자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한 인간이 시대 앞에서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가장 단순하면서도 준엄한 가르침이다.

국회에 출근해 장준하기념사업회 장호권회장(사상계 발행인)과 김주태선양사업회 회장과 동행해 이태영박사 27기 추도식에 참석하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동행의 주제가 일주명창(一炷明窓)이었다.

어둠이 짙을수록 더 큰 불을 기다리기보다, 자신이 먼저 촛불이 되겠다는 결기. 그것이 장준하의 삶이었고, 그의 정치관이자 윤리였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8월 장준하 선생 50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모든 불의 앞에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 실천가이자 양심가”라고 평가한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독립, 민주, 통일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험난한 고비마다 장준하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응답했다.

그는 권력의 주변에서 안전하게 비판하는 지식인이 아니라, 권력의 한복판에서 불의를 정면으로 마주한 사람이었다.

오늘의 정치 현실은 어떤가.

여의도는 말로는 정의를 외치지만, 행동 앞에서는 늘 계산이 앞선다.

불의 앞에 서면 “시기상조”를 말하고, 책임 앞에서는 “제도 탓”을 한다.

촛불을 들기보다 조명을 탓하고, 창을 밝히기보다 창의 크기부터 논쟁한다. 그 사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특히 현직 여야 국회의원들과 내년 6월 지방선거 출마자들에게 장준하의 ‘일주명창’은 죽비처럼 울려야 한다.

정치란 결국 자리를 차지하는 기술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무엇을 밝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 번의 결단, 한 번의 반대, 한 번의 고집스러운 침묵 거부가 시대의 창을 밝힐 수 있다면, 그 책임을 회피할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

장준하 선생은 이미 1950년대 말, 민주주의 제도조차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시절에 “민주주의의 원동력은 제도가 아니라 부정과 불의에 맞서는 민중의 용기”라고 말했다.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선거는 제도이지만, 민주주의는 태도다. 공천은 권력의 배분이지만, 정치의 본질은 양심의 선택이다.

다가오는 지방선거는 또다시 수많은 약속과 공약으로 넘쳐날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묻는 것은 점점 단순해지고 있다.

“당신은 언제 촛불이 되었는가.”, “불의 앞에서 멈춘 적은 없는가.”라는 질문이다. 말 잘하는 정치인은 많지만, 어둠 속에서 먼저 불을 켠 정치인은 드물다.

장준하라는 이름은 그래서 지금도 빛난다. 그는 완벽해서가 아니라,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단을 넘어야 자유와 평등이 온전히 실현된다는 그의 통찰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그 과제 앞에서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의 촛불이 되는 일이다.

일주명창(一炷明窓). 오늘의 정치가 다시 국민의 창을 밝히려면, 누군가는 다시 타올라야 한다. 그 불은 제도도, 조직도 아닌 정치인의 양심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양심은 언제나 행동으로 증명된다./정종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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