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은 지금 복합적인 위기와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소농 중심 구조에서 비롯되는 생산비 부담, 경쟁력 저하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누적된 구조적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정책은 여전히 일시적 지원이나 대규모 단지 중심의 공모사업에 머무르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농촌이 가진 본래의 지속성과 자립성을 회복하기 어렵다. 농촌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지역의 자연환경, 역사성, 고유 자원을 활용한 경관농업·치유농업·특화농업 중심의 구조적 전환이 필수적이다.
2024년 시행된 치유농업 연구개발 및 육성법, 지역특화작목 육성법, 농어촌정비법, 농촌공간 재구조화법 등은 이러한 전환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들이다. 그러나 현실의 현장 적용은 여전히 대형 모델 중심이다. 마을 단위 공동체나 소규모 농가가 참여하기에는 제도적 문턱이 높고, 각종 절차는 복잡하며, 규모 기준 또한 지역의 실제 조건을 반영하지 못한다. 농촌의 대다수는 소규모 농지와 주민 공동체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음에도, 행정은 표준화된 규모와 설계도를 요구한다. 그 결과, 특색을 가진 작은 특화단지는 제도 앞에서 좌절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농촌 활성화는 결코 대형 단지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작지만 정체성이 확실한 마을 단위 특화단지에서 더 높은 지속성과 완성도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약초농업으로 특화된 한 마을을 생각해 보자. 약초 재배 과정 자체가 경관을 이루고, 그 경관이 다시 치유 프로그램·농촌 체험·가공식품 개발로 확장된다. 이러한 구조는 1차 생산, 2차 가공, 3차 체험·관광이 통합된 6차 산업의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다.
소규모 약초마을, 산채 특화지구, 과수마을 등은 지역의 자연성, 농업의 원형, 주민 공동체의 생활문화가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에 지속성과 차별성이 크다. 실제로 국내외에서도 대규모 투자보다 소규모 특화단지의 성공 사례가 더 많다. 문제는 이러한 가능성을 제도가 충분히 지원하지 못하는 데 있다는 점이다.
이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행정의 의지로는 부족하다.
기초단체장의 확고한 철학과 실행 의지, 행정과 주민 간 신뢰 형성, 현장을 이해하는 전문가 중심의 행정 체계, 주민 참여를 이끄는 정신적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네 가지 요소가 갖춰질 때 비로소 작은 마을에서도 지속 가능한 농업 모델이 탄생하고, 이것이 지역 농업을 안정시키는 제도 개혁의 출발점이 된다.
앞으로의 정책은 소규모 특화단지도 충분히 참여 가능한 구조로 전환돼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특화단지 지정 기준의 규모 완화, 소규모 치유농업·경관농업 사업의 절차 간소화, 마을 단위 특화작목 육성 시 지자체 평가 기준 현실화, 공모사업 선정 기준에 ‘지속 가능 마을 모델 우선’ 항목 신설, 규제자유특구의 소규모 실증 모델 적용 확대 등 특히 약초농업은 경관·체험·치유·가공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조를 갖고 있어 소규모 단지에서도 자립형 6차 산업을 구축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약초 재배지의 경관은 자연 회복과 건강 이미지를 전하고, 치유 프로그램·약초 기반 가공식품·지역 브랜드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형성된다면 대형 사업보다 더 빠르고 실질적인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끌 수 있다.
법적 기반은 이미 충분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대형 모델 중심 행정에서 벗어나 지역 고유성을 가진 소규모 특화단지를 지원하는 제도적 전환이다. 이러한 변화가 이뤄진다면 농촌은 단순히 지원을 받는 지역이 아니라, 치유·관광·스마트농업·경관산업을 아우르는 미래형 농업 산업지대로 다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작지만 강한 농촌. 그 시작은 거대한 공모사업이 아니라 마을에서, 주민들 사이에서, 지역의 자연 속에서 일어난다.
지역의 고유성을 담은 작은 농업 공동체가 대한민국 농촌의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낼 것이다.
/자연치유생리학전문가 농업법인 자연가 이사장 송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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